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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문산[鹿門山]~녹문상총[鹿門上冢]~녹문옹[鹿門翁]~녹문은[鹿門隱]~녹미[鹿尾]


녹문산[鹿門山]  중국 호북(湖北) 양양현(襄陽縣)에 있는 산인데, 한말(漢末)에 방덕공(龐德公)이 처자를 거느리고 녹문산에 올라가 약을 캐며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相友錄 卷一> 당 나라 맹호연(孟浩然)이 또 그곳에 은거하였다 하여 은거지의 대명사로 쓰인다.

녹문산[鹿門山]  녹문산은 오늘날 중국 호북성(湖北省) 양번시(襄樊市) 동남쪽에 위치한 산 이름이다. 한(漢)나라 말기에 방덕공(龐德公)이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간곡한 초빙을 물리치고 세상을 멀리하여, 아내를 데리고 그곳에 들어가 약초를 캐어 생활하며 편안한 여생을 마쳤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녹문산[鹿門山]  후한(後漢) 방덕공(龐德公)은 방공(龐公) 또는 방거사(龐居士)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는 남군(南郡)의 양양(襄陽)에 살았는데,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초빙하자 나아가지 않고 가솔을 모두 거느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녹문상총[鹿門上冢]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방덕공(龐德公)이 일찍이 처자를 거느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서 약(藥)을 캐며 은거(隱居)했는데, 역시 당시의 고사였던 사마휘(司馬徽)가 일찍이 방덕공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침 방덕공은 무덤에 올라가고 집에 없었더라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은거를 의미한다.

녹문심[鹿門心]  녹문(鹿門)의 마음. 세속의 부귀와 영달을 초탈하여 자연을 벗하며 은거하였던 동한(東漢) 말의 고사(高士) 방덕공(龐德公)이 품었던 고결한 마음을 말한다. ‘녹문’은 방덕공이 처자식을 거느리고 들어가 약초를 캐며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일생을 마쳤다고 하는 양양(襄陽)의 산 이름이다.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찾아가서 “선생은 벼슬을 받지 않으니 무엇을 자손에게 남겨 주겠소?” 하니, 방덕공은 “남들은 모두 위태로움을 주는데 나만은 편안함을 주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녹문옹[鹿門翁]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한 후한(後漢)의 은사(隱士)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킨다. 그는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서로 손님을 대하듯 공경하였다. 벼슬길에 나오라는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청을 거절하고 훗날 처자식을 거느린 채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세상에 나오지 않고 일생을 마쳤다. <小學 善行>

녹문옹[鹿門翁]  녹문옹은 후한(後漢)의 은자(隱者) 방덕공(龐德公)을 말한다. 그는 유표(劉表)의 간절한 요청에도 끝내 응하지 않고서 처자를 데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다 생을 마쳤다고 한다. <尙友錄 1>

녹문옹[鹿門翁]  후한(後漢)의 은사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킨다. 방덕공은 양양(襄陽) 사람으로 현산(峴山) 남쪽에 살면서 도회지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찾아가서 “선생은 농촌에 괴롭게 살면서 벼슬을 받지 않으니, 후세에 무엇을 자손에게 남겨 주겠소.[先生苦居畎畝而不肯官祿, 後世何以遺子孫乎.]”라고 묻자, 그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위태로움을 주는데, 이제 나만은 편안함을 주겠습니다.[世人皆遺之以危, 今獨遺之以安.]”라고 하며, 처자를 데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後漢書 卷113 龎公列傳>

녹문은[鹿門隱]  후한(後漢)의 방덕공(龐德公)이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처자식과 함께 녹문산(鹿門山)으로 들어가 약초나 캐면서 영원히 세속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尙友錄 卷一>

녹문조[鹿門曹]  녹문의 무리. 은사를 뜻한다. 황보밀(皇甫謐)의 고사전(高士傳)에 의하면, 후한 때의 방덕공(龐德公)이 유표(劉表)로부터 여러 번 부름을 받았으나 끝내 나가지 않고 성 밖에서 밭을 갈며 살다가, 처자를 데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숨어 살았다고 한다. 이후 녹문산은 은거지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당나라 시인 맹호연도 녹문산에 은거하였다.

녹문증상총[鹿門曾上冢]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방덕공(龐德公)이 일찍이 처자(妻子)를 거느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약초(藥草)를 캐며 은거했는데, 당시 고사이던 사마휘(司馬徽)가 일찍이 방덕공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침 방덕공은 성묘(省墓)를 가고 없었더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녹문현[鹿門賢]  녹문(鹿門)의 어짊. 녹문(鹿門)은 오늘날 중국 호북성(湖北省) 양번시(襄樊市) 동남쪽에 위치한 산 이름이다. 한(漢)나라 말기에 방덕공(龐德公)이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간곡한 초빙을 물리치고 세상을 멀리하여, 아내를 데리고 그곳에 들어가 약초를 캐어 생활하며 편안한 여생을 마쳤다. <後漢書 卷113 逸民列傳 龐公>

녹미[鹿尾]  불자(佛子)라고도 하고 총채라고도 하는데, 사슴의 꼬리로 묶어서 만든 것을 말한다. 불도(佛道)를 뜻하기도 한다. 주미(麈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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