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논독[論篤]~논렬[論列]~논령금가행[論令今可行]~논문일준주[論文一樽酒]


논독[論篤]  실천은 못 하면서 언론만 독실한 것을 이른다. 공자가 말하기를 “언론이 독실한 것만 가지고는 그가 군자인지, 외모만 그럴 듯하게 꾸민 사람인지 알 수 없으므로 허여할 수가 없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공자가 “언론이 독실한 사람을 평가한다면, 그를 군자라고 할 것인가, 겉만 장엄한 자라고 할 것인가?[論篤是與 君子者乎 色莊者乎]”라고 한 말이 실려 있다. 이에 대해 주자는 “말과 외모로만 사람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주석하였다.

논두무하진[論竇武何進]  후한서(後漢書) 두하열전(竇何列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두무(竇武)의 딸은 환제(桓帝)의 왕비가 되고 하진(何進)의 누이는 영제(靈帝)의 왕비가 되었는데, 당시에는 환관(宦官)이 권력을 좌지우지하여 모두 죽일 계책을 세웠으나 실패하여 해를 당하였다. 그 끝에 다음과 같은 논평(論評)이 붙어 있다. “두무(竇武)와 하진(何進)은 원구(元舅)라는 자리에 의지하고 정치를 보좌하는 권력에 의거하여 안으로는 태후(太后)가 조정에 군림하는 위엄에 기대고 밖으로는 뭇 영웅들의 바람을 타는 듯한 기세를 맞았으나, 끝내 환관들에 의해 일은 어그러지고 몸은 죽었으며 공은 허물어져 마침내 세상이 슬퍼하는 바가 되었다. 어찌 지혜(智慧)가 부족한데 권세(權勢)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겠는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말하기를 ‘하늘이 상(商)을 폐한 지 오래되었는데 주군(主君)께서 흥기시키려고 하고 계십니까?’라 하였다. 이는 송 양공(宋 襄公)이 홍(泓)에서 패한 까닭이다.” 소순(蘇洵)은 송 양공(宋襄公)이 하늘의 뜻을 어겨 실패한 일과 두씨(竇氏)・하씨(何氏)의 패인을 나란히 든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다.

논렬[論列]  죄목을 들추어내어 늘어놓는 일을 가리킨다.

논령금가행[論令今可行]  한(漢)나라 장석지(張釋之)가 조회(朝會)를 마치고 국가를 이롭게 할 계책을 진언할 때에 효문제(孝文帝) 앞에 나아가 사리에 맞은 편리한 말만 하니 문제(文帝)가 “낮추어라. 고원(高遠)한 일을 논하지 말고, 지금 실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하도록 하라.[卑之無甚高, 論令今可行.]”고 하였다 한다. 이에 장석지가 진(秦)나라와 한나라의 교체기에 진나라가 천하를 잃은 까닭과 한나라가 일어난 까닭을 말하였다. <漢書 卷50 張釋之傳>

논문[論文]  논문(論文)은 벗과 함께 술을 마시며 문장을 담론하는 이른바 ‘준주논문(樽酒論文)’을 뜻한다. 당나라 두보(杜甫)가 위북(渭北)에 있을 때 강동(江東)에 있는 이백(李白)을 그리워하며 “위수 북쪽에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에는 해 저문 구름이로다. 언제나 한 동이 술을 마시며, 다시 함께 자세히 글을 논해볼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읊었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全唐詩 卷224 春日憶李白>

논문일준주[論文一樽酒]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시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엔 해 저문 구름이로다. 어느 때나 한 동이 술을 두고서, 우리 함께 글을 조용히 논해 볼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친구 간에 서로 헤어져 있으면서 서로 그리워하는 것을 뜻한다. <杜少陵詩集 卷1>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