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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피를 북에 바른들… <한비자/설림하>


초(楚)나라 왕이 오(吳)나라를 공격하니, 오나라에서는 저위(沮衛)와 궐융(蹶融)으로 하여금 음식을 가지고 가 초나라 군대를 위문하게 하였다.

초나라 장군이 말하였다.

“이 자를 묶어라. 죽여서 그 피를 북에 바를 것이다.”

그리고는 물었다.

“너는 여기에 올 때 점을 치고 왔느냐.”

궐융이 대답했다.

“점을 치고 왔습니다.”

“점괘가 길(吉)이었느냐.”

“길이었습니다.”

초나라 사람이 말했다.

“지금 초나라 장군은 너를 죽여 그 피를 북에 바르려고 하는데 길(吉)하다니 무슨 말인가.”

“그래서 길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나라가 나를 여기에 보낸 것은 장군께서 노여움에 차 있는지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장군께서 노기가 충천하시면 오나라는 해자를 깊이 파고 성채를 높이 축조하여 수비를 견고히 할 것입니다. 또 장군의 노여워하지 않으면 수비를 느슨하게 할 것입니다. 지금 장군께서 나를 죽인다면 오나라는 반드시 수비를 엄중하게 할 것입니다. 또한 나라의 명운을 점 친 것이지 한 신하를 위한 점이 아니었습니다. 무릇 한 신하가 죽어 한 나라가 존속할 수 있다면 어찌 길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죽으면 지각이 없어지는 법입니다. 따라서 나를 죽여 그 피를 북에 바른들 무슨 유익함이 있겠습니까. 만일 죽어서도 지각이 있다면 나는 전쟁이 벌어질 때 북소리가 나지 않도록 힐 것입니다.”

이에 초나라 사람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한비자 제23편 설림(하)>


荊王伐吳, 吳使沮衛·蹶融犒於荊師, 荊將軍曰:「縛之, 殺以釁鼓.」 問之曰:「汝來卜乎?」 答曰:「卜.」 「卜吉乎?」 曰:「吉.」 荊人曰:「今荊將以女釁鼓, 其何也?」 答曰:「是故其所以吉也. 吳使人來也, 固視將怒, 將軍怒. 將深溝高壘;將軍不怒, 將懈怠. 今也將軍殺臣, 則吳必警守矣. 且國之卜, 非爲一臣卜. 夫殺一臣而存一國, 其不言吉, 何也? 且死者無知, 則以臣釁鼓無益也;死者有知也, 臣將當戰之時, 臣使鼓不鳴.」 荊人因不殺也. <韓非子 第23篇 說林(下) 8>


  • 형[荊] 중국 초(楚)의 옛 이름. 은(殷) 나라 때 구주(九州)의 하나. 형주(荊州). 서주(西周) 시대부터 양자강(揚子江) 이남의 남방 지역을 가시나무(荊) 우거진 밀림 지대라는 의미에서 초(楚)나 형(荊)으로 부르다가 그 지역에 나라가 건립되자 그대로 초(楚)나라 또는 형(荊)나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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