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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서이씨[隴西李氏]~농서주하[隴西柱下]~농서치[隴西耻]~농소[農所]


농서이공[隴西李公]  중국의 이씨(李氏)의 본관이 농서이다. 중국 노자(老子)의 성이 이씨이고 그가 태어난 곳이 농서이기 때문에 중국의 이씨는 모두 농서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다.

농서이씨[隴西李氏]  노자(老子)의 성은 이씨(李氏), 이름은 이(耳), 자는 백양(伯陽), 시호는 담(聃)이다. 노자의 증손 담(曇)이 아들 숭(崇)과 기(璣)를 낳았는데, 숭의 자손은 농서(隴西)에 살고 기(璣)의 자손은 조군(趙郡)에 살았다. 이 둘을 각각 농서 이씨(隴西李氏), 조군 이씨(趙郡李氏)라고 한다. 농서 이씨가 한나라 때 이릉(李陵)이 흉노에 항복함에 따라 쇠퇴한 반면, 조군 이씨는 위나라 효문제 때 가장 번창하였다. 그 후 농서 이씨인 이연(李淵)이 당나라를 세워 천하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농서 이씨가 번창하였다. 당나라 초기에 노자를 태상현원황제(太上玄元皇帝)라고 칭하고 노자의 성과 당 왕실이 같은 성이라고 하여, 자신의 이씨를 선리(仙李)라 높였다. <史記 卷63 老子韓非列傳> <星湖僿說 卷9 人事門 李姓>

농서자[隴西子]  농서 출신인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농서(隴西)는 중국 감숙성(甘肅省) 임조부(臨洮府)와 공창부(鞏昌府)의 서쪽에 걸쳐 있었던 진한(秦漢) 시대의 군(郡) 이름이다. 당(唐)나라 이백(李白)이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에서 자신을 ‘농서(隴西)의 포의(布衣)’라고 말한 데에서 농서가 이씨(李氏)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농서주하[隴西柱下]  중국에서는 “천하의 이씨는 모두 농서를 본으로 한다.” 하는데, 농서 이씨의 시조는 노자(老子)다. 노자는 주하사(柱下史)라는 관직에 있었다.

농서치[隴西耻]  한(漢)나라 때 명장 이광(李廣)의 손자인 이릉(李陵)이 농서(隴西) 사람으로서 무제(武帝)의 명을 받고 흉노(匈奴)를 토벌하러 갔다가 도리어 흉노에 항복하고 우대를 받았는데, 이에 한실(漢室)에서는 그의 처자를 모두 죽였고 그의 문하에 있었던 농서의 사대부들은 모두 그 사실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史記 卷109 李將軍列傳>

농서포의[隴西布衣]  당(唐) 나라 이백(李白)이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에서 자신을 ‘농서(隴西)의 포의(布衣)’라고 말한 데에서 농서가 이씨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농서행[隴西行]  악부(樂府)의 옛 제목으로 보출하문행(步出夏門行)이라고도 하며, 상화가(相和歌)의 슬조곡(瑟調曲)에 속한다. 본래 “부인이 단장하고 문에서 손님을 맞는다.[婦有容色 能應門承賓]”는 내용이었는데, 양(梁) 간문제(簡文帝) 때부터 ‘고달픈 전쟁과 정인(情人)에 대한 그리움’을 주제로 삼았다. 농서(隴西)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녕하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일대를 이른다.

농소[農所]  종실(宗室)과 귀척(貴戚) 소유의 농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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