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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거[棠車]~당거[唐擧]~당건[唐巾]~당검위사간[唐儉爲死間]


당거[棠車]  어진 감사(監司)가 타는 수레를 말한다. 주(周)나라 때 소공(召公)이 북연(北燕)에 봉해져서 감당나무 아래에서 어진 정사를 펼쳤는데, 소공이 죽은 뒤에 백성들이 소공을 그리워해 감당나무를 감히 베지 못하면서 감당지시(甘棠之詩)를 지어 기렸다. <史記 卷34 燕召公世家>

당거[唐擧]  전국 시대(戰國時代) 때 양(梁)나라 사람으로 남의 형상(形狀)과 안색(顔色)을 보고 그 길흉(吉凶)과 요상(妖祥)을 알아내었다고 한다. 연(燕)나라 사람인 채택(蔡澤)이 여러 제후에게 유세(遊說)하고 다녔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이에 당시에 상(相)을 잘 본다고 이름이 높았던 당거(唐擧)를 찾아가서 상을 보니, 당거가 “그대는 코는 납작하고 어깨는 움츠러들고 이마는 튀어나오고 콧마루는 서지 않고 다리는 휘었으니, 옛말에 ‘성인(聖人)은 상모(相貌)가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그대를 두고 말한 듯하오.”라고 하였다. 채택이 “부귀는 내 이미 갖고 있으나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나의 수명이오.”라고 하니, 당거가 “지금부터 43년이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채택이 “내가 고량진미를 먹고 준마(駿馬)를 타며 황금인(黃金印)을 차고 군주의 앞에서 읍(揖)한다면 43년을 살아도 충분하다.”고 하고는 웃으면서 사례하고 나왔다. 그 뒤에 채택은 진(秦)나라로 들어가 소왕(昭王)에게 유세하여 마침내 정승이 되었다. <史記 卷79 蔡澤列傳>

당건[唐巾]  당나라 제왕들이 쓴 두건에서 유래한 것으로 후대에 선비들이 많이 쓰고 다녔다 한다. 오사모(烏紗帽)라고도 한다.

당검위사간[唐儉爲死間]  당검(唐儉)은 당 태종(唐太宗) 때의 문신으로 벼슬이 천책부장사(天策府長史)에 이르렀다. 정관(貞觀) 4년(630)에 이정(李靖)과 이세적(李世勣)이 돌궐을 기습하여 격파하자, 철산(鐵山)으로 후퇴한 힐리가한(頡利可汗: 힐리카칸)이 세(勢)의 불리함을 알고는 병력을 이끌고 적북(磧北)으로 달아나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사신을 당(唐)나라에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태종(太宗)이 이를 받아들여 당검(唐儉) 등을 보내어 위무하고, 이정(李靖)에게 명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힐리가한(頡利可汗)을 맞이해 오게 하였는데, 힐리가한(頡利可汗)의 본심을 알아차린 이정(李靖)이 군대를 무장시켜 밤중에 출동하여 방심하고 있는 돌궐의 본진을 급습해서 1만여 명의 수급(首級)을 베고 10여 만을 포로로 잡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당검(唐儉)은 가까스로 빠져나와 생명을 구했는데, 사람들은 ‘이정(李靖)이 당검(唐儉)을 사간(死間)으로 이용했다.[唐儉爲死間]’고 말하였다. <李衛公問對直解 中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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