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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발복[當代發福]~당덕종[唐德宗]~당도[當道]~당도[唐都]


당대발복[當代發福]  부모(父母)를 명당(明堂)에 장사(葬事)하여 그 덕으로 당대(明堂)에 부귀(富貴)를 누리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당덕종[唐德宗]  당(唐)나라의 황제 이괄(李适)로 덕종(德宗)은 묘호(廟號)이다. 시호는 신무효문황제(神武孝文皇帝)이다. 대종(代宗)의 장자로, 현종(玄宗) 때 궁중에서 태어나 봉절군왕(奉節郡王)이 되었다. 대종 보응(寶應) 원년(762)에 천하병마원수(天下兵馬元帥)가 되어 사조의(史朝義)를 토벌하고 동도(東都)를 수복하여 이 공으로 중서령(中書令)에 올랐다. 광덕(廣德) 2년(764)에 태자가 되고 대력(大曆) 14년(779)에 즉위하였다. 초기에는 양염(楊炎)을 재상으로 삼았는데 그의 의견에 따라 조(租)·용(庸)·조(調) 제도를 철폐하고 양세법(兩稅法)을 시행하였으나 큰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강명(剛明)하다고 자임하며 참소하는 말을 믿었는데, 간사한 노기(盧杞)를 재상으로 삼았으며 국가의 재정을 증대시킨 유안(劉晏)을 양염(楊炎)의 모함만 듣고 무고하게 죽였다. 건중(建中) 2년(781)에 이정기(李正己)·전열(田悅) 등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윽고 평정되었으며 얼마 후 주도(朱滔)·전열(田悅)·왕무준(王武俊)·이납(李納)·이희열(李希烈) 등이 연계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에 대응하고자 경원(涇原)에서 군사를 징발했는데 건중(建中) 4년(783)에 경원에서 병변(兵變)이 일어나 장안(長安)으로 쳐들어오자 봉천(奉天)으로 달아났다. 흥원(興元) 원년(785)에 이성(李晟)이 병사를 이끌고 장안을 수복하자 되돌아왔다. 이후로는 부세(賦稅)를 늘려 취렴(聚斂)에 골몰하였으며 육지(陸贄)·양성(陽城)·한유(韓愈) 등을 폄척하고 배연령(裴延齡)·두참(竇參) 등을 가까이하여 정치를 부패하게 만들었다. 또한 환관들에게 금군(禁軍)의 병권을 맡겨 그 세력이 더 강해졌다. 정원(貞元) 21년(805)에 병사하였다.

당도[當塗]  권력을 장악하다. 집권하다.

당도[當途]  현재 정권을 잡은 사람 또는 벼슬을 살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길을 막다. 當塗(당도)로 쓰기도 한다.

당도[當道]  정권을 잡다. 실권을 쥐다. 당도는 요로(要路)에 앉아 권력을 제멋대로 부리는 것을 이르는 말로, 후한 순제(後漢順帝) 때 대장군(大將軍) 양기(梁冀)가 권력을 독점하여 조정이 매우 부패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때마침 조정에서 장강(張綱) 등 8인을 선발하여 전국을 순시하면서 관리들의 치적을 규찰하게 하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명을 받고 떠났으나, 유독 장강은 자기의 수레바퀴를 낙양(洛陽)의 도정(都亭)에 묻으면서 말하기를 “승냥이, 이리가 요로에 버티고 있는데, 어찌 여우, 살쾡이 따위를 물을 것이 있겠는가.[豺狼當道 安問狐狸]”라 하고 가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다.

당도[當道]  당도는 정도(正道)에 부합된다는 뜻으로서 곧 임금을 이끌어 정도에 부합되게 하는 것을 이른다. 맹자(孟子) 고자 하(告子下)에 “군자가 군주를 섬김은 군주를 인도하여 도에 합당하게 하여 인에 뜻을 두게 하기를 힘쓸 뿐이다.[君子之事君也 務引其君以當道 志於仁而已]”라고 하였다.

당도[撞擣]  세게 부딪치다.

당도[唐都]  한나라 문제(文帝)와 무제(武帝) 연간에 살았던 천문학자 겸 방술사이다. 일월오성(一月五星 : 해와 달 및 화, 수, 목, 금, 토 등의 행성), 즉 7개 별들 간의 거리와 머무는 장소 및 위도를 측정하여 하늘을 28개의 구역으로 나눴다. 그는 또한 무제의 명을 받아 원봉(元封) 연간 기원전 80년에 태초력(太初曆)을 제정하였다. 사마천의 부친 사마담(司馬談)은 당도에게서 천문학을 수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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