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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발자국 웅덩이 속의 붕어<설원/선설>


장주(莊周)가 집이 가난하여 위(魏)나라에 가서 식량을 꾸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문후가 이렇게 핑계를 대었다.

“우리 백성들이 곡식을 바쳐 오면 그때 가져다 드리지요.”

이 말에 장자가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이곳으로 오던 중에 길가의 소 발자국으로 파여 물이 고인 곳에 붕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붕어는 나를 보자 크게 탄식하며 ‘제가 살아날 수 있을까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너를 위해 남쪽 초나라 왕을 만나 강수와 회수의 물길을 터서 너에게 끌어다 대주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붕어가 ‘지금 나의 목숨은 그저 한 단지나 한 항아리의 물에 죽고 살고가 달렸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대가 나를 위해 초왕을 만나 거창하게 강수·회수의 물을 끌어다 대어주겠다니, 그때가 되면 그대는 마른 생선가게에 가서나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제가 가난하여 곡식을 꾸러 왔는데 백성이 나라에 곡식을 바쳐야 내게 주겠다니, 곡식을 가지고 왔을 때는 저를 날품팔이꾼의 시장에서나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 말에 문후가 곡식 백종을 풀어 장주의 집으로 보내주었다.

<설원說苑선설善說>


莊周貧者, 往貸粟於魏, 文侯曰:「待吾邑粟之來而獻之.」 周曰:「乃今者周之來, 見道傍牛蹄中有鮒魚焉, 大息謂周曰:「我尚可活也?」 周曰:「須我爲汝南見楚王, 決江·淮以溉汝.」 鮒魚曰:「今吾命在盆甕之中耳, 乃爲我見楚王, 決江·淮以溉我, 汝即求我枯魚之肆矣.」 今周以貧故來貸粟, 而曰須我邑粟來也而賜臣, 即來亦求臣傭肆矣.」 文侯於是乃發粟百鐘, 送之莊周之室. <說苑善說>


  • 장주[莊周]  전국시대 철학가로 자(字)는 자휴(子休) 또는 자목(子沐)이다. 송(宋)나라 몽(蒙: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몽성蒙城) 사람으로 일설에는 하남성(河南省) 상구(商丘) 사람이라 한다. 송(宋)나라 칠원리(漆園吏)를 지냈다. 원래는 초(楚) 장왕(莊王)의 후예(後裔)로, 난리를 만나 송(宋)나라로 이주하였다. 천인합일(天人合一)과 청정무위(淸靜無爲)를 주장하는 도가학설(道家學說)을 창시(創始)한 사람의 하나로, 노자(老子)와 함께 노장(老莊)으로 일컬어진다. 저서에 장자(莊子)가 있다.
  • 부어[鮒魚]  민물고기의 한 가지로 붕어이다.
  • 종[鍾]  고대의 용량 단위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공실(公室)의 용량 단위로, 1종(鍾)은 6곡(斛) 4두(斗)이다. 후대에 8곡(斛) 또는 10곡(斛)으로 삼은 제도도 있었다. <春秋左氏傳 昭公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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