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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興八首[其八]추흥8수8 / 자각봉 그늘은 미피로 들고 / 杜甫두보


昆吾御宿自逶迤[곤오어숙자위이]   곤오산 어숙천은 구불구불 이어지고

紫閣峰陰入渼陂[자각봉음입미피]   자각봉 산그늘은 미피호로 들어가네

香稻啄餘鸚鵡粒[향도탁여앵무립]   향기로운 벼는 쪼다 남긴 앵무의 쌀이요

碧梧棲老鳳凰枝[벽오서로봉황지]   벽오동은 깃들다 늙은 봉황의 가지로다

佳人拾翠春相問[가인습취춘상문]   가인들은 비취 깃 주워 봄 인사 나누고

仙侶同舟晩更移[선려동주만갱이]   저물면 좋은 짝과 다시 한 배로 떠나네

彩筆昔曾干氣象[채필석증간기상]   예전에는 문장으로 기상을 추구했건만

白頭吟望苦低垂[백두음망고저수]   백발로 읊조리며 바라보다 고개 떨구네

<秋興八首[其八]추흥88 / 가을에 이는 정회情懷 / 杜甫두보>


  • 두보[杜甫]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두릉야로(杜陵野老), 두릉포의(杜陵布衣) 등이 있다. 양양(襄陽) 지방 출신으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40대인 천보(天寶) 14년(755년)에야 비로소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당시 장안에서 반군에게 잡혔다가 탈출, 숙종(肅宗)의 진영에 합류하여 좌습유(左拾遺)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지낸 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두습유(杜拾遺), 두공부(杜工部) 등으로 불렀고, 또 장안성 밖 소릉(少陵)의 초당(草堂)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두소릉(杜少陵), 두초당(杜草堂)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함께 이두(李杜)로 불렸는데, 두목(杜牧)과 이상은(李商隱)의 합칭인 소이두(小李杜)와 구별하기 위해 대이두(大李杜)라고도 부른다. 문학을 발판 삼아 벼슬로 나아가려던 그의 꿈이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짧은 한때를 빼고는 평생을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중국의 서북 지역을 유랑하다가 결국 병사했다. 벼슬살이와 달리 문학, 특히 시에서 이룬 성취가 대단하였다. 남긴 시가 1500여 수에 달하며 작품집으로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그 자신은 시성(詩聖)으로, 또 그의 시는 시사(詩史)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 정회[情懷]  가슴에 사무쳐 오는 정과 회포. 생각하는 정과 회포(懷抱).
  • 곤오[昆吾]  한무제(漢武帝)의 상림원(上林苑)에 있던 지명이다. 지금의 섬서성(陜西省) 남전현(藍田縣) 서쪽에 있었다.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에 “한무제가 상림원을 넓혔으니, 동남쪽으로 의춘·정호·곤오에 이르렀다.[武帝廣開上林, 東南至宜春·鼎湖·昆吾.]”라고 하였다.
  • 곤오[昆吾]  곤오는 유주(流洲)의 산천에 많이 쌓여 있다는 돌의 이름이다. 운급칠첨(雲笈七籤) 권26에 “유주(流洲)의 산천에 쌓인 돌이 많은데, 그것을 곤오라고 한다. 그 돌을 제련하여 쇠를 뽑아내 칼을 만들면 수정처럼 빛나고 해맑으며 옥을 마치 진흙처럼 자를 수 있다.”라고 하였다. <雲笈七籖 卷26 十洲三島>
  • 곤오[昆吾]  곤오산. 습유기(拾遺記)에 “곤오산 밑에는 색이 불꽃 같은 붉은 쇠가 많다. 옛날 황제가 치우와 싸울 때 이곳에 병사를 벌려 세우고 대치했다. 백 장 깊이로 땅을 파도 샘이 나오지 않고 별 같은 불빛만을 볼 수 있었다. 흙 중에 붉은 빛이 도는 것을 제련하여 구리를 만들었다. 구리는 색이 푸르고 날카로웠다. 샘의 빛깔이 붉었다.[昆吾山, 其下多赤金, 色如火. 昔黃帝伐蚩尤, 陳兵于此地. 堀深百丈, 猶未及泉, 惟見火光如星, 地中多丹, 煉石爲銅. 銅色靑而利, 泉色赤.]”라고 하였다.
  • 곤오[昆吾]  삼대(三代) 시대 서쪽 오랑캐 나라인 곤오국(昆吾國)으로 걸(桀)의 당여(黨與)이다. 시경(詩經) 상송(商頌) 장발(長發)에 “탕임금이 위(韋)나라와 고(顧)나라를 정벌하시고, 곤오와 하나라 걸을 쳤다.[韋顧旣伐 昆吾夏桀]”라고 하였다.
  • 곤오[昆吾]  하(夏)·상(商)시대에 있었던 부락(部落) 이름이다. 기성(己姓)으로 처음에 복양(濮陽: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복양시濮陽市)에 봉해졌다. 하(夏)나라가 쇠퇴하자 곤오(昆吾)가 하백(夏伯)이 되어 옛 허(許: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허창시許昌市)로 옮겼다가 뒤에 상탕(商湯)에게 멸망되었다. 그 부락 사람들은 도기(陶器)의 제조와 동기(銅器)의 주조에 뛰어났다고 한다. <詩經 商頌 長發><春秋左氏傳 昭公 12년>
  • 어숙[御宿]  어숙원(御宿苑). 어숙원(御宿苑)은 장안성(長安城) 남쪽에 있다. 삼보황도기(三輔黃圖記) 권4에 “어숙원은 장안성 남쪽 어숙천 안에 있다. 한무제(漢武帝)가 이궁(離宮)의 별관(別館)을 만들고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하여, 왕래하며 구경하거나 이 가운데에서 유숙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어숙(御宿)이라 하였다.[御宿苑, 在長安城南御宿川中. 漢武帝為離宮別院, 禁御人不得入. 往來游觀, 止宿其中, 故曰御宿.]”라고 하였다.
  • 어숙천[御宿川]  어숙천은 장안성 남쪽 40리쯤에 있는데, 동쪽으로 석오곡(石鰲谷)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풍수(灃水)에서 끝나 동서 길이 50리, 남북으로 15리의 길지 않은 개천이다. 한무제(漢武帝)가 호수(滈水)의 물가를 따라 왕궁 별관을 지을 때 사람들의 왕래를 금지한 이후, 야간에 미복으로 궁을 나올 때는 이곳에서 잠을 자고 돌아갔기 때문에 어숙천(御宿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위이[逶迤]  에두른 길이 구불구불함. 길이나 산천 등이 구불구불 끊이지 않고 멀리 이어진 모양. 회남자(淮南子) 태족훈(泰族訓)에 “강물은 구비져 흐르며 멀리 갈 수 있고, 산은 완만히 기울어 높아질 수 있네.[河以逶迤故能遠, 山以陵遲故能高.]”라고 하였다. 또, 두보(杜甫)의 시 구일기잠삼(九日寄岑參)에 “진창길에서 벼슬하는 군자는 수레로 굳이 구불구불 갈 수 있지만, 벼슬 없는 소인은 빨리 달려가기 어렵다.[君子强逶迤 小人困馳驟]”라고 하였다.
  • 자각봉[紫閣峰]  종남산(終南山)의 한 봉우리로, 자각산(紫閣山)을 이른다. 본래 이름은 자개산(紫蓋山)이다. 지금의 섬서성(陜西省) 호현(戶縣) 동남(東南) 쪽에 있다. 백거이(白居易)의 시 숙자각산북촌(宿紫閣山北村)에 “새벽에 자각봉을 돌아다니다, 해가 지면 산 아래 마을에서 잤네.[晨遊紫閣峰 幕宿山下村]”라고 하였다.
  • 미피[渼陂]  미피(渼陂)는 섬서성(陝西省) 호현(鄠縣) 서쪽에 있는 호수 이름이다. 종남산(終南山)에서 흘러온 물이 이곳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노수호(澇水湖)로 들어간다. 전하는 바로는 이곳에서 생김새가 아름다운 물고기가 났다고 한다. 호송(胡松)의 유기(遊記)에 “미피의 위에 자각봉(紫閣峰)이 있고, 자각봉의 아래에 호수물이 매우 맑다. 산록(山綠)을 빙 둘러싸고 있는데, 사방의 넓이가 2~3리 정도 된다. 가운데는 연꽃과 물오리, 기러기 등이 있다.[雲誤陂上爲紫閣峰, 峰下陂水澄湛, 環抱山麓, 方廣可數裏, 中有芙蕖·鳧雁之屬.]”라고 하였다. 두보(杜甫)의 미피행(渼陂行)에 “미피호의 중간 남쪽은 순전히 산이 가라앉은 듯하고 움직이는 그림자는 잔잔한 물결 속에 일렁이네.[半陂以南純浸山, 動影裊窕沖融間.]”라고 하였다.
  • 미피호[渼陂湖]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호현(戶縣) 서쪽에 있는 못 이름인데, 이곳이 경치가 매우 뛰어나서 일찍이 두보(杜甫)는 잠삼(岑參)의 형제와 함께 이 물에서 놀았다. 그리하여 “잠삼의 형제 모두 기이한 것을 좋아하여 나를 초청해서 멀리 와 미피에 놀았네[岑參兄弟皆好奇 邀我遠來遊渼陂]”라는 시를 지었다.
  • 향도[香稻]  향기로운 쌀. 벼의 한 가지로, 까끄라기가 붉고 낱알이 희며 향기로운 맛이 있다. 잡곡에 대비해서 쌀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 앵무[鸚鵡]  사람 소리를 흉내내는 새로,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앵무새는 능히 말을 하나, 날짐승에서 벗어나지 않는다.[鸚鵡能言 不離飛鳥]”라고 하였다.
  • 벽오[碧梧]  푸른색의 오동나무.
  • 봉황[鳳凰]  봉황(鳳皇). 경사스러움을 상징하는 상상상(想象上)의 새, 몸은 닭의 머리,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 꼬리의 모양 등을 하고, 키는 6척 가량이며 몸과 날개에는 오색의 빛이 찬란하고, 오음(五音)에 맞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오동나무에 깃들이고 대의 열매를 먹으며 예천(醴泉)을 마신다고 한다. 성천자(聖天子)가 나타나면 이 새가 나타나는데 뭇 짐승들이 따라 모인다고 한다. 용, 거북, 기린과 함께 사령(四靈)을 이루는데 중국 고대의 전설에 많이 나온다. 봉황새. 봉새. 봉조. <山海經 南山經>
  • 봉황[鳳凰]  봉황새. 전설에 나오는 새로 수컷을 봉(鳳)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한다. 鳳皇(봉황)으로도 쓴다. 산해경(山海經)에, 단혈산(丹穴山)에는 마치 닭처럼 생긴 새가 있어 오색(五色)의 문채(文彩)가 찬란한데, 이를 봉황(鳳凰)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정현(鄭玄)의 시전(詩箋)에 “봉황의 품성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鳳凰之性, 非梧桐不棲.]”라고 하였다. 또, 한유(韓愈)의 여최군서(與崔群書 최군에게 보내는 글)에 “봉황이나 영지 같은 것들은 총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모두 그것이 아름다움의 상징인 것을 알고, 푸른 하늘과 한낮의 해는 허드렛일을 하는 아랫사람들까지도 그것들이 상쾌하고 환하다는 것을 안다.[鳳凰芝草賢愚皆以爲美瑞, 靑天白日奴隸亦知其淸明.]”라고 하였다.
  • 가인[佳人]  아름다운 사람. 미인(美人). 백성이 임금을 지칭하는 말. 군자와 현인. 참하고 아름다운 여자. 사랑하는 마음을 얻게 하는 이성(異性)의 사람.
  • 습취[拾翠]  비취새의 깃을 줍는다는 뜻인데, 옛날 부녀자들이 수식(首飾)을 위해 비취새의 깃을 주웠던 데서 온 말이다. 전하여 후세에는 흔히 부녀자들의 봄놀이하는 것을 지칭한다. 조식(曺植)의 낙신부(洛神賦)에 “밝은 구슬을 캐기도 하고, 비취의 깃을 줍기도 한다.[或採明珠 或拾翠羽]”라고 하였다. <六臣註文選 卷19>
  • 습취[拾翠]  취조(翠鳥) 깃을 주음. 물총새의 깃털을 모아 머리에 장식하기 위해 주웠다고 한다. 후대에는 부녀자들이 봄놀이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 상문[相問]  예물을 선사하여 정의(情意)를 표시하는 것이다. 시경(詩經) 정풍(鄭風) 여왈계명(女曰鷄鳴)에 “그대가 초대하여 오신 분임을 안다면 잡패를 선물할 것이며 그대가 사랑하는 분임을 안다면 잡패를 줄 것이며 그대가 좋아하는 분임을 안다면 잡패로 보답하리라.[知子之來之 雜佩以贈之 知子之順之 雜佩以問之 知子之好之 雜佩以報之]”라고 하였다.
  • 선려[仙侶]  동행하거나 같이 노는 사람을 칭찬하여 이르는 말이다.
  • 선려[仙侶]  음조(音調)의 이름.
  • 채필[彩筆]  여러 가지 색깔을 칠하는 데에 쓰는 붓.
  • 채필[綵筆]  뛰어난 문장 실력을 뜻한다. 남조(南朝)의 강엄(江淹)이 꿈속에서 오색필(五色筆)을 곽박(郭璞)에게 돌려준 뒤로부터 미문(美文)이 나오지 않았다는 고사와 이태백(李太白)이 붓 끝에 꽃이 피는 꿈을 꾸고 난 뒤로부터 더욱 시상(詩想)이 풍부해졌다는 채필생화(綵筆生花)의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59 江淹傳, 開元天寶遺事 夢筆頭生花>
  • 채필[彩筆]  채필(彩筆)은 오채필(五彩筆)의 준말로, 뛰어난 시문(詩文)의 재질을 의미한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때 문장가인 강엄(江淹)이 어렸을 때, 어떤 사람이 오색 붓을 주는 꿈을 꾼 뒤로 문사(文思)가 크게 진보했는데, 만년에 야정(冶亭)에서 잠을 자는데 자칭 곽박(郭璞)이라는 사람이 와서 이르기를 “내게 붓이 있었는데, 경(卿)한테 가있은 지가 오래되었으니 돌려주어야겠다.”라고 하므로, 자기 품속에서 오색필(五色筆)을 꺼내어 그에게 돌려준 꿈을 꾸었는데,[又嘗宿于冶亭, 夢一丈夫自稱郭璞, 謂淹曰:‘吾有筆在卿處多年, 可以見還.’ 淹乃探懷中, 得五色筆一, 以授之.] 그 후로는 좋은 시문(詩文)을 전혀 짓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채색 붓이란 곧 뛰어난 문재(文才)를 의미한다. <南史 卷59 江淹列傳, 梁書 卷14 江淹列傳, 太平御覽 卷398 人事部39 吉夢下>
  • 기상[氣象]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나 마음씨. 바람, 구름, 비 등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
  • 백두[白頭]  허옇게 센 머리라는 뜻로 노년을 이른다. 또는, 탕건을 쓰지 못했다는 뜻으로, 지체는 높으나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참고로, 사기(史記) 추양전(鄒陽傳)에 “머리가 세도록 오래 사귀어도 초면과 같기도 하고 잠깐 길거리에서 만난 사이라도 구면과 같다.[白頭如新 傾盖如故]”라고 하였다.
  • 백두[白頭]  백두음(白頭吟)의 약어이다. 고악부의 한 편인데 전한(前漢)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아내 탁문군(卓文君)의 작품으로 사마상여의 애정이 한결같지 않자 원망하며 지은 것으로 전해온다. 포조(鮑照)·이백(李白) 등도 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다. <樂府詩集 白頭吟>
  • 백두음[白頭吟]  악부시집(樂府詩集) 상화가사(相和歌辭) 초조곡(楚調曲)의 이름이다.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사마상여가 무릉 사람의 딸을 첩으로 들이려 하자, 탁문군이 백두음을 짓고 결별의 뜻을 보이자 사마상여가 그만두었다.[司馬相如將聘茂陵人女爲妾, 卓文君作白頭吟以自絶, 相如乃止.]”라고 하였다. 또, 사문유취후집(事文類聚後集) 권14 작백두음(作白頭吟)에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무릉(茂陵)의 여자를 첩으로 삼으려고 하니, 그의 아내 탁문군(卓文君)이 백두음을 지어 스스로 관계를 끊기를 ‘희기는 산 아래 구름과 같고, 밝기는 구름 사이의 달과 같네. 낭군이 두 마음을 먹고 있기에, 서로 영원히 결별을 하려고 하네.[曉如山下雲 皎若雲間月 良人有兩意 故與相訣別]’라 하니, 사마상여가 그 일을 중지하였다.”라고 하였다. 참고로, 당나라 이백(李白) 등의 작품도 있는데,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관점에서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이별의 슬픔을 토로한 것이다.
  • 백두음[白頭吟]  악부(樂府)의 곡조 이름이다. 악부(樂府) 상화가사(相和歌辭) 중의 하나인 백두음(白頭吟)은 임공(臨邛)에 살던 부호의 딸인 탁문군(卓文君)이 지은 것이라 한다. 한(漢)나라 때의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임공에 살던 청춘과부인 탁문군을 보고 한눈에 반하여, 탁문군을 데리고 밤중에 도망쳐서 성도(成都)에서 살았는데, 사마상여의 집이 워낙 가난하여 살길이 막연하자, 목로집을 차려 놓고 탁문군에게는 술을 팔게 하고 사마상여 자신은 그 곁에서 그릇을 씻으면서 살았다. 그 뒤에 사마상여가 부귀하게 되어서 무릉(茂陵) 사람의 딸을 첩으로 삼으려고 하였는데, 탁문군이 함께 사랑을 이어갈 수 없다는 내용으로 백두음(白頭吟)을 지어 절교(絶交)를 선언하자, 사마상여가 그만두었다 하는데, 그 노래에 “원컨대 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얻어서 머리가 희게 세도록 서로 떠나지 않고저.[願得一心人 白頭不相離]”라고 하였다고 한다. <漢書 卷57上 司馬相如傳>
  • 저수[低垂]  아래로 늘어뜨리다. 드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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