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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상지인[堂上之人]~당상지작[堂上之雀]~당서[唐書]~당서[唐鼠]


당상지인[堂上之人]  정호(程顥)가 한 말로 밝게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호는 “맹자의 지언은 마치 사람이 당 위에 있어야 당 아래에 있는 사람의 곡직을 분별할 수 있고, 만약 스스로 당 아래로 내려가면 도리어 분별할 수 없는 것과 같다.[孟子知言 正如人在堂上 方能辨堂下人曲直 若自下去堂下 則却辨不得]”라고 하였다. 이 말은 본래 이정유서(二程遺書) 권3에 실려 있는 말인데,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 지언장(知言章)의 주에 인용되었다.

당상지작 부중지어[堂上之雀 釜中之魚]  곧 환란이 닥쳐오는데도 모르고 태평하다는 뜻이다. 집에 불이 나서 기둥이 곧 타게 되는데도 여기에 집을 지은 제비는 아무 걱정 없이 지저귄다는 옛말에서 유래하였으며, 솥 안에 든 고기는 곧 삶겨 죽는데도 모르고 있다는 뜻으로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음을 말한다.

당상집례[堂上執禮]  당 위에서 홀기(笏記)를 읽는 제관이다.

당상촉[堂上燭]  두보(杜甫)의 시에 “마루 위에 촛불 아직 켜기도 전에, 자리 털고 일어나며 벌써 갓을 바로 쓰네.[堂上燭未秉 座中冠已峨]”라는 표현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3 詠興五首>

당생결의[唐生決疑]  당생(唐生)은 전국 시대 때 관상을 잘 보기로 유명했던 당거(唐擧)이다. 결의(決疑)는 의혹(疑惑)을 푼다는 말이다. 연(燕)나라의 변사(辯士) 채택(蔡澤)이 불우했던 시절 당거를 찾아가 관상을 봐 달라고 했는데, 채택의 얼굴을 본 당거가 웃으면서 “내가 듣기로 성인(聖人)은 관상을 보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마 선생이 거기에 해당할 듯하오.”라고 하였다. 채택이 “부귀는 내가 이미 갖고 있으니,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나의 수명이오.”라고 하자, 당거가 “지금부터 43년이오.”라고 하였다. 채택이 “내가 고량진미를 먹고 준마(駿馬)를 타며 황금인(黃金印)을 차고 군주의 앞에서 읍(揖)한다면 43년을 살더라도 충분하다.”라고 하였는데, 그 뒤 진(秦)나라 소왕(昭王)에게 유세하여 마침내 정승이 되었다. <史記 卷79 蔡澤列傳>

당서[唐書]  당서(唐書)는 신당서(新唐書)·구당서(舊唐書) 2종이 있는데, 구당서(舊唐書)는 오대(五代) 석진(石晉) 때 관찬(官撰)으로 유후(劉昫) 등이 지었다. 신당서는 송(宋)의 구양수(歐陽脩)·송기(宋祁)가 지었다. 통례로 신당서를 당서라 한다.

당서[唐書]  오대(五代) 후진(後晉)의 관찬사서(官撰史書)로, 2백 권이다. 조형(趙瑩)·장소원(張昭遠)·가위(賈緯)·조희(趙熙) 등이 편찬하고 재상 유구(劉昫)가 감수(監修)하였다. 송(宋) 경력(慶曆) 연간에 구양수(歐陽脩)와 송기(宋祁)가 편찬한 신당서(新唐書)와 구분하기 위해 구당서(舊唐書)로 불린다.

당서[唐鼠]  전설에 고대 당공방(唐公房)이 승선(昇仙)할 때 닭과 개 등을 모두 데리고 갔는데 오직 쥐만이 남아 사람에게 악한 짓을 많이 하였다. 이에 그 당방에 살던 집 쥐들은 한 달에 세 번 자신의 창자를 꺼내 놓아 따라가지 못하였음을 후회하는 심정을 드러냈다고 한다[唐公房擧宅升仙 鷄犬皆去 唯鼠惡其不淨 不將去 鼠自悔 一月三吐易其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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