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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讜議]~당의문[唐義問]~당의즉묘[當意卽妙]~당이부지이위신[當而不知以爲信]


당의[讜議]  중국 남송(南宋)의 고종(高宗) 초년에 진회(秦檜)가 금나라와의 화의(和議)를 주장하자 장천(張闡), 호전(胡銓) 등이 반대하다가 당의로 몰렸는데, 위섬지(魏掞之)가 그 사건을 무오당의(戊午讜議)라는 글로 썼다.

당의가례[當依家禮]  마땅히 가례를 따르다. 여기서 가례(家禮)는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이른다. 依(의)는 ‘의지하다’, ‘의거하다’의 의미이다.

당의문[唐義問]  송(宋)나라 강릉(江陵) 사람이다. 자는 사선(士宣) 또는 군익(君益)이고, 당개(唐介)의 아들이다. 신종(神宗) 희녕(熙寧) 연간에 불려 사농관구문자(司農官勾文字)와 관당공사(管當公事)가 되었다. 증효관(曾孝寬)을 따라 하동(河東)으로 사신을 갔다 돌아와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보고한 것이 알려져 호남전운판관(湖南戰運判官)에 발탁되었다. 일 때문에 면직되어 귀향했다. 철종(哲宗) 원우(元祐) 연간에 재기하여 제주지주(齊州知州) 등을 역임하고, 문언박(文彦博)의 추천으로 집현수찬(集賢修撰)이 더해졌으며, 형남절도사(荊南節度使)로 있을 때에는 거양(渠陽)의 모든 성채(城砦)를 폐지하자고 청하였으며, 만(蠻)의 양성수(楊晟秀)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는 호북전운사(湖北轉運使)로 나가서 양성수(楊晟秀)를 토벌해 항복시켰다. 관직은 영창지부(穎昌知府)까지 올랐다.

당의소학[當依小學]  마땅히 소학(小學)을 따름. 마땅히 소학(小學)에 의거함. 소학(小學)은 주자(朱子)가 제자 유자징(劉子澄)에게 소년들을 학습시켜 교화시킬 수 있는 내용의 서적을 편집하게 하여 주자가 교열, 가필한 것이다. 1185년에 착수하여 2년 뒤 완성하였다. 내·외의 2편으로 되어 있는데, 내편은 입교(立敎)·명륜(明倫)·경신(敬身)·계고(稽古)의 4개 항목을 기본으로 하여 유교의 윤리 사상의 요강을 논하였으며, 외편은 가언(嘉言)·선행(善行)의 2개 항목 밑에 한(漢)나라 이후 송나라까지의 현철(賢哲)의 언행을 기록하여 내편과 대조시켰다.

당의즉묘[當意卽妙]  그 자리에 잘 적응하고 재빠르게 재치를 발휘함. 그 경우(境遇)에 적합(適合)한 재치를 그 자리에서 부림. 그 자리의 분위기(雰圍氣)에 맞추어 즉각 재치 있는 언동(言動)을 함. 곧 임기응변(臨機應變)을 이른다.

당이[堂姨]  어머니의 종부(從父) 자매이다.

당이별론[當以別論]  상례(常例)에 따르지 아니하고, 특별(特別)히 논(論)하여야 마땅함을 이른다.

당이부지이위신[當而不知以爲信]  마땅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신(信)이라 할 줄 모름. 당(當)은 합당(合當)의 뜻이다. 지덕(至德)의 시대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 따위의 규범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저절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가치에 부합되게 행동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장자(莊子) 제12편 천지(天地)에 “윗사람은 마치 나뭇가지 끝과 같았고, 백성들은 마치 들의 사슴과 같아서 단정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의(義)라 자랑할 줄 몰랐고,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인(仁)이라 자랑할 줄 몰랐으며 진실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충(忠)이라 자랑할 줄 몰랐으며 마땅하게 행동하면서도 그것을 신(信)이라 자랑할 줄 몰랐으며 벌레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서로 도와주면서도 그것을 베푸는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행동함에 자취가 없었으며 일을 해도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다.[上如標枝, 民如野鹿, 端正而不知以爲義, 相愛而不知以爲仁, 實而不知以爲忠, 當而不知以爲信, 蠢動而相使, 不以爲賜. 是故行而無迹, 事而無傳.]”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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