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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悼亡]~도망옥[逃亡屋]~도면[陶沔]~도명이명수[逃名而名隨]


도망[悼亡]  죽은 아내를 애도함. 상처(喪妻)를 이른다. 진(晉)나라 반악(潘岳)이 상처를 하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도망시(悼亡詩) 3수를 지었는데, 그 시가 전송되어 후대에 망처(亡妻)를 노래한 시들이 그 제목을 도망(悼亡)이라 하게 되었다.

도망시[悼亡詩]  죽은 처(妻)를 슬퍼하는 시이다. 반기성(潘騎省)은 서진(西晉)의 반악(潘岳)으로, 아내를 잃은 뒤에 먼저 보낸 아내를 그리워하며 도망시(悼亡詩) 3수를 지었는데, 후대에 망처(亡妻)를 노래한 시들이 그 제목을 도망(悼亡)이라고 하게 된 것은 그에게서 비롯한 것이다. <文選 卷23 哀傷>

도망옥[逃亡屋]  집을 버리고 도망가다. 집을 버리고 유랑하다. 당(唐)나라 때 시인 섭이중(聶夷中)의 시 상전가(傷田家)에 “이월에 새 고치실을 미리 팔고, 오월이면 새 곡식 미리 파니, 우선 눈앞의 부스럼은 고치지만 도리어 심장의 살을 도려내네. 나는 우리 임금님 마음이 밝게 비추는 촛불로 변화하여, 화려한 잔치 자리를 비추지 말고, 사방에 유랑할 집들을 두루 비춰 주길 바라네.[二月賣新絲 五月糶新穀 醫得眼前瘡 剜却心頭肉 我願君王心 化作光明燭 不照綺羅筵 徧照逃亡屋]”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농민들의 몹시 어려운 생활고를 의미한다. <類說>

도면[陶沔]  당(唐)나라 때 사람이다. 당 현종(唐玄宗) 연간에 이백(李白)이 공소보(孔巢父), 한준(韓準), 배정(裴政), 장숙명(張叔明), 도면(陶沔)과 함께 태안부(泰安府)의 조래산(徂徠山) 아래 죽계(竹溪)에 살면서 날마다 술을 실컷 마시고 취하여 노래하곤 하여, 당시에 그들을 죽계육일(竹溪六逸)이라 호칭하였다. 도면(陶沔)이 선보현(單父縣) 현위(縣尉)로 있을 때, 춘추시대 때 공자의 제자였던 복자천(宓子賤)이 일을 끝내고 금을 타던 금대(琴臺)를 중축하였는데, 오래잖아 이백(李白), 두보(杜甫), 고적(高適) 등이 선보현에 들러 노닐면서 시를 지었고, 이백이 위 작품을 쓴 뒤로 반월대(半月臺)라는 이름이 하나 더 생겼다.

도명[逃名]  명성(名聲)을 피해 살다. 세상에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피하여 숨다. 이름이 나는 것을 피해 달아나다. 사공도(司空圖)의 시 귀왕관차년작(歸王官次年作)에 “술 마시고 노래하며 이름 피해 산 긴 세월, 문 앞에 귀인들 수레 찾아올 일 없었네.[酣歌自適逃名久, 不必門多長者車.]”라고 하였고, 후한서(後漢書) 일민전(逸民傳) 법진(法眞)에 “법진은 이름을 들을 수는 있어도 몸은 만나기 어렵다. 이름에서 도망쳐도 이름이 나를 따라오고 명성을 피하려 해도 명성이 나를 쫓아오니 백세의 스승이라고 이를 만하다.[法眞名可得而聞, 身難得而見; 逃名而名我隨, 避名而名我追, 可謂百歲之師者矣.]”라고 하였다.

도명부[陶明府]  명나라 장수 도양성(陶良性)으로, 호는 양오(養吾)이다. 절강 처주부(處州府) 진운현(縉雲縣) 사람이다.

도명성[逃名姓]  명성이나 공을 구하지 않다. 이름이 나는 것을 피하여 숨다.

도명이명수[逃名而名隨]  후한(後漢)의 법진(法眞)이 네 차례에 걸친 황제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깊은 산속으로 숨어 버리자, 친구인 곽정(郭正)이 “법진의 이름은 들을 수 있어도 몸은 만나 보기 어렵다. 이름에서 도망쳐도 이름이 나를 따라오고, 명성에서 도피해도 명성이 나를 쫓아오니, 백세의 스승이라고 이를 만하다.[法眞名可得聞 身難得而見 逃名而名我隨 避名而名我追 可謂百世之師矣]”라고 찬탄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83 法眞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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