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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락서원[東洛書院], 동란이화[東欄梨花], 동람이욕[同濫而浴], 동랑[董郞]


동락[東洛]  경상도(慶尙道) 인동현(仁同縣)을 가리키는데, 이곳에 동락서원(東洛書院)이 있다.

동락[東洛]  낙양(洛陽)이다. 한당(漢唐) 시기에는 낙양을 동도(東都)로 삼았으므로 동락으로 불렀고, 동도 유수(東都留守)를 두었다. 일반적으로 왕도(王都)를 지칭하기도 한다. 참고로, 장안(長安)을 서도(西都)라고 불렀다.

동락서원[東洛書院]  경북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서원이다. 1655년(효종6) 지방유림의 공의로 장현광(張顯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76년(숙종2) ‘동락’이라고 사액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오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5)에 훼철되었다. 1932년 다시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동란이화[東欄梨花]  동쪽 난간의 배꽃. 소식(蘇軾)의 시 동란이화(東欄梨花)에 “배꽃 희고 버들은 짙푸른데, 버들솜 나는 시절 꽃이 성에 가득하네. 구슬퍼라 동쪽 난간 가 한 그루 배꽃이여, 인생에서 몇 번이나 청명을 보랴.[梨花淡白柳深青 柳絮飛時花滿城 惆悵東欄一株雪 人生看得幾淸明]”라고 하였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8 東欄梨花> 동란(東欄)은 밀주(密州) 관사의 동쪽 난간을 지칭하고, 그 옆에 배나무가 있었다. 인생무상을 노래하였다. 이 시는 동파전집(東坡全集)에 ‘화공밀주오절 동란이화(和孔密州五絕 東欄梨花)’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동람이욕[同濫而浴]  같은 욕조에서 함께 목욕함. 濫(람)은 鑑(감)과 통하는 글자로 목욕통을 뜻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鑑(감)은 큰 동이이다.[鑑 大盆也]”라고 하였다. 장자 제25편 칙양(則陽)에 “저 영공(靈公)에게는 아내가 세 명 있었는데 그들과 같은 욕조에서 함께 목욕할 때 대부 사추(史鰌)가 예물을 받들고 공(公)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자 폐백을 스스로 받아들고 사추(史鰌)를 부축했습니다. 사생활의 방자함이 저토록 심했지만 현인을 대하는 태도가 이처럼 조심스러웠으니 바로 이것이 그가 영공(靈公)이라는 시호를 얻게 된 까닭입니다.[夫靈公有妻三人, 同濫而浴. 史鰌奉御而進所, 搏幣而扶翼. 其慢若彼之甚也, 見賢人若此其肅也, 是其所以爲靈公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동랑[董郞]  한(漢)나라 애제(哀帝) 때의 동현(董賢)을 말한다. 자는 성경(聖卿)이고 운양(雲陽: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순화淳化) 사람이다. 어사 동공(董恭)의 아들로 대단한 미남이었다. 애제의 총애를 받아 22세 때 벼슬이 대사마에 올랐다. 친족과 처족들이 두루 벼슬을 살았고 집안 노복들도 황제의 상을 받을 정도로 국정 농단이 심했다. 애제 사후에 권세를 잃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 병 없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에 대한 사람들의 원망이 컸다. 한산시(寒山詩) 137(一三七)에 “동랑은 어려서부터, 황성 안을 드나들었네. 옷은 새끼거위 털로 지었고, 얼굴은 잘생겨 그림 같았네. 항상 답설마를 타고 다녀, 지나간 자리에 먼지 일었네. 구경꾼들 길가를 가득 메우고, 뉘 집 아들이냐고 수군거렸네.[董郞年少時, 出入帝京裡. 衫作嫩鵝黃, 容儀畫相似. 常騎踏雪馬, 拂拂紅塵起. 觀者滿路傍, 個是誰家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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