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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마[銅馬], 동마상법[銅馬相法], 동마적미[銅馬赤眉], 동마주[挏馬酒]


동마[銅馬]  후한서(後漢書) 동탁열전(董卓列傳)에 대한 이현(李賢)의 주(注)에 “명제(明帝) 영평(永平) 5년(62)에 장안(長安)에서 비렴(飛廉)과 동마(銅馬)를 맞이해서 상서문(上西門) 밖에 두고 평락관(平樂館)이라고 명명하였다. 동마는 동문경(東門京)이 만든 것으로 금마문(金馬門) 밖으로 가져온 것이다.[明帝永平五年 長安迎取飛廉及銅馬 置上西門外 名平樂館 銅馬則東門京所作 致於金馬門外者也]”라고 하였다. 동문경(東門京)은 무제 때에 말을 잘 알아본 사람이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열전(馬援列傳)에 “효무황제(孝武皇帝) 때에 말을 잘 알아보는 동문경이라는 자가 동마(銅馬)를 주조하는 법을 바쳤는데, 조서(詔書)를 내려 노반문(魯班門) 밖에 이 말을 세우고 노반문의 이름을 금마문으로 바꾸었다.[孝武皇帝時 善相馬者東門京 鑄作銅馬法獻之 有詔立馬於魯班門外 則更名魯班門曰金馬門]”라고 하였다. 동마법(銅馬法)은 말의 골격에 맞추어 구리로 주조한 모형인바, 바로 동마(銅馬)이다.

동마[銅馬]  동마군(銅馬軍). 왕망(王莽)의 신(新)나라 말년에 하북(河北)지역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군이다. 서기 24년 의군(義軍)인 유수(劉秀)에게 연패 당하여 동마부(銅馬部)의 대다수가 의군에 편입되었다. 후에 동마부의 잔여세력이 손등(孫登)을 황제로 세웠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동마부[董馬賦]  동중서(董仲舒)와 사마천(司馬遷)의 부(賦)를 이른다.

동마상법[銅馬相法]  중국 후한(後漢) 때의 장군 마원(馬援)이 지은 책이다. 마원은 광무제(光武帝)의 신하가 되어 교지(交趾)와 흉노(匈奴) 등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동마상법(銅馬相法)에 “말의 성질이 순하고 나쁨[水火]을 알려면, 분명한 그 증거가 콧구멍 사이에 있다. 윗입술이 아래로 처지면서 모나게 생기고 입 안이 붉으면서 윤기가 나는 말은 하루에 천 리를 달리고, 턱밑이 너무 오목하거나 아랫입술이 길거나 어금니가 앞으로 튀어나오거나 또 어금니가 이에서 한 치쯤 떨어져 있으면, 이런 말은 하루에 4백 리를 가며, 어금니가 칼날처럼 날카로우면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 눈방울은 광채가 있어야 하고 배는 불룩해야 하며, 허리는 가늘어야 하고, 갈빗대는 길어야 한다. 현박(懸薄)은 두껍게 생기고 길어야 하는데, 현박은 곧 다리이다. 배 밑은 평평해야 하고, 가슴[汗溝]은 깊어야 하며, 무릎은 곧아야 하고, 사타구니는 넓어야 하며, 무릎은 또 모나야 하고, 발굽은 세 치쯤 두꺼운 것이 돌처럼 단단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동마적미[銅馬赤眉]  동마(銅馬)·철경(鐵脛)·우래(尤來)·대쟁(大鎗)·적미(赤眉)는 모두 전한(前漢) 말기 왕망(王莽)이 정권을 잡은 혼란기에 일어난 농민 반란군의 무리이다. 이들은 군단을 형성하여 각자 장군(將軍) 등의 칭호를 일컬었으며, 자신들이 점거하고 있는 산천이나 지명에 따라 이름하였는데, 적미(赤眉)는 눈썹을 붉게 칠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광무제(光武帝)는 항복해 온 이들을 포용하고 융화시켜 후한(後漢)을 일으켰는데, 특히 동마(銅馬)의 협력에 큰 힘을 입었으므로, 광무제(光武帝)를 동마제(銅馬帝)라 일컫기도 하였다. <後漢書 권1 光武帝紀 上>

동마주[挏馬酒]  마유(馬乳)로 만든 술이다. 동주(挏酒)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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