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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번[東樊], 동번국[東藩國], 동번풍속기[東藩風俗記], 동법어일[動法於日]


동번[東樊]  ‘동쪽 울타리’라는 뜻으로, 은거하는 곳을 이른다. 도연명(陶淵明)의 시 음주(飮酒)시 다섯 번째 수에 “인가 속에 오두막 지었건만, 시끄러운 거마 소리 없다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묻는다면, 마음이 멀면 땅은 절로 궁벽해진다오.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니, 아득히 남산이 보이네.[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구절이 보인다.

동번[東藩]  강원 감사. 강원도.

동번[東藩]  고려 시대에 지금의 함경도 지역인 동북 지방에 거주하던 여진족. 달리 동여진(東女眞), 동북여진(東北女眞)이라고도 한다.

동번[東藩]  동방의 제후(諸侯). 동쪽 번국(藩國). 중국의 동쪽에 있는 나라를 가리킨다.

동번국[東藩國]  명 나라에서 조선을 자기네의 속국이라 하여 동쪽 울타리[東藩]라는 뜻으로 동번국(東藩國)이라 하였다.

동번내복[東藩內服]  동번(東藩)은 천자국의 동쪽 울타리를 가리키며 내복(內服)은 천자 직할의 지역으로서 기복(畿服)과 같다. 모두 조선을 가리킨다.

동번승미[東藩繩美]  1778년(정조2) 이은(李溵)이 심양(瀋陽)에 문안 정사(問安正使)로 갔을 때, 건륭제가 써서 보내 준 글씨이다.

동번풍속기[東藩風俗記]  고려풍속기(高麗風俗記)라고도 불리는데 당시에도 전하지 않았으므로 유득공이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정초(鄭樵)의 통지(通志)나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벌정[東伐鄭]  좌전 노희공(魯僖公) 32년 정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주둔하고 있던 진군(秦軍)의 장수 기자(杞子)가 진목공에게 편지를 보내, 정나라가 그에게 정나라의 도성 신정성(新鄭城)의 수비를 맡도록 했기 때문에 만일 진나라가 비밀리에 군사를 보내 기습한다면 정나라를 점령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진목공은 백리해의 아들 맹명시(孟明視) 등의 세 장수에게 군사를 주어 정나라를 기습하도록 했다. 다음 해인 33년 맹명시 등이 이끌던 진군이 정나라에 가까운 지금의 하남성 언사시(偃師市) 부근에 있었던 활국(滑國)에 이르렀을 때 진군의 행군이 발각되어 정나라가 방어를 강화하자 기습전이 아니고 정면으로 신정성을 공격했을 경우 중과부적으로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대신 활국을 멸했다. 활국을 멸하고 포로와 전리품을 갖고 귀환하던 500승의 달하는 진나라 군사들은 효산의 험지에서 당진군(唐晉軍)의 매복에 걸려 모두 전사하고 세 장수는 당진국의 포로가 되었다.

동법어일[動法於日]  신당서(新唐書) 180권 이덕유열전(李德裕列傳)에 이르기를 “임금은 해를 본받아 해가 뜨면 정사를 돌보고, 해가 지면 편히 쉰다. 전(傳)에 이르기를, 임금은 방으로 들어가는데도 일정한 법도가 있다.[人君動法於日 故出而視朝 入而燕息 傳曰 君就房有常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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