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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董史], 동사[東槎], 동사기략[東史記略], 동사록[東槎錄], 동사무사[動思無邪]


동사[董史]  동호(董狐)의 직필(直筆)을 말한다. 동호는 춘추 시대 진(晉)의 사관(史官)이다. 진 영공(晉靈公)이 조돈(趙盾)을 죽이려 하자 조돈이 도망갔다가, 조천(趙穿)이 영공을 죽인 뒤에 조돈이 돌아오자, 동호가 “조돈이 그 임금을 죽였다.”고 기록하여 조정에 보였다. 조돈이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강변하자, 동호가 “그대는 일국의 정경으로 도망을 하면서 국경을 넘지도 않았고, 돌아와서는 역적을 토벌하지도 않았으니, 그대가 죽인 게 아니고 누구인가.”라고 하였는데, 이 일과 관련하여 공자가 “동호는 옛날의 훌륭한 사관이었다. 그의 서법은 숨기는 일이 없었다.”라고 칭송하였다. <春秋左氏傳 宣公2年>

동사[東槎]  배를 타고 동쪽으로 간다는 뜻인데, 대개는 일본으로 사신 가는 일을 말한다. 그러나 중국 사신의 입장에서 조선에 오는 것도 ‘동사’라고 할 수 있으므로, 중국 사신을 빈접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일례로 1602년 조사(詔使) 고천준(顧天峻)이 왔을 때 빈접을 담당한 문인들이 지은 시를 엮어 책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을 동사록(東槎錄)이라 하였다.

동사강목[東史綱目]  단군 조선부터 고려 말기까지를 다룬 통사적인 성격의 역사책으로, 안정복(安鼎福)이 편집하였다. 저자의 나이 45세 때인 1756년(영조32)부터 시작하여 3년 만인 기묘년(1759)에 초고를 완성하였는데, 그 뒤에도 스승 이익(李瀷) 및 동료 윤동규(尹東奎)·이인섭(李寅燮) 등과 서신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며 수정 보완하여, 편찬을 시작한 지 22년 만인 1778년(정조2)에 완성하였다.

동사공[董思恭]  당(唐) 나라 때의 시인으로 소주(蘇州) 사람이다. 고종(高宗)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지냈다. 허경종(許敬宗), 맹리정(孟利貞) 등과 함께 요산옥채(瑤山玉彩) 500권 편찬에 참여했다. 과거시험의 문제 유출과 연루되어 영외(嶺外)로 쫓겨났고 그곳에서 세상을 떴다.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시 19편이 실려 있다. 영풍(詠風), 영설(詠雪), 영일(詠日), 영월(詠月), 영리(詠李), 영도(詠桃) 등 사물을 읊고 경치를 노래한 작품이 많다. 동사공집(董思恭集)이 전한다.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동사기략[東史記略]  어떤 책인지 자세하지 않다. 다만 조선 중기의 문신 성준(成遵)이 동사기략을 지어 고려부터 폐조(廢朝)까지의 역사적 사건을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필법(筆法)으로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동사다휘[東史多諱]  동사(東史)에 숨긴 사실이 많음.

동사록[東槎錄]  1601년(선조34) 이정귀(李廷龜)가 원접사(遠接使)가 되어 조사(詔使) 고천준(顧天埈)과 어울려 동행한 박동설(朴東說)·이안눌(李安訥)·차천로(車天輅)·권필(權韠) 등과 수창(酬唱)한 시를 모아 놓은 책이다.

동사무사[動思無邪]  주역(周易) 무망괘(无妄卦)의 무망은 지성(至誠)하여 사위(邪僞)가 없는 것을 이르는데, 지성은 곧 천도(天道)이므로, 무망괘의 전(傳)에 이르기를 “천리로써 동하는 것이 무망이요, 인욕으로써 동하면 망이 되는 것이니, 무망의 의의가 위대한 것이로다.[動以天爲无妄 動以人欲則妄矣 无妄之義 大矣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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