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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설[豹說] 나그네와 호랑이와 표범 이야기 <최립/간이집>


단양(丹陽) 고을의 아전 한 사람이 공문(公文)을 전달하기 위해 별을 머리에 이고 충주(忠州)로 달려오다가, 장회원(長會院)에 이르러서 호랑이 새끼 세 마리가 길가에 있는 것을 보고는 손에 든 지팡이를 가지고 때려서 모두 죽여 버렸다. 그러자 얼마 뒤에 어미 호랑이가 사납게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으므로, 아전이 얼떨결에 높은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서 피하였는데, 호랑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그냥 놔두고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에 아전이 허리띠를 풀어서 자기 몸을 나무에다 묶어 놓고는 한참 동안을 참고 기다렸더니, 호랑이가 표범 한 마리를 이끌고서 다시 찾아오는 것이었다. 이는 표범이 몸집이 작은 데다 날렵해서 나무를 잘 타기 때문이었으니, 사납기 그지없는 호랑이로서도 다른 짐승의 도움이 필요했던가 보다.

아전으로서는 지금의 상황에서 표범이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무엇보다도 걱정이었다. 그래서 잠방이를 벗어서 두 다리에 겹으로 포개 다리를 가지런히 하나로 접은 뒤에, 표범의 머리통에 잠방이를 깊숙하게 덮어씌워 놓고는 아래로 밀어서 떨어뜨렸다.

그러자 호랑이가 뭔가 덮어쓰고 땅에 떨어진 것이 사람인 줄로만 무턱대고 믿고는 마음 내키는 대로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버리고 말았는데, 다시 자세히 보니 사람은 여전히 꼼짝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고 그 대신 표범이 죽어 버렸는지라, 나무 주위를 하염없이 서성거리다가 다시 크게 포효(咆哮)를 하고는 산골짜기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쯤 하늘도 밝아 왔으므로 아전이 나무 위에서 내려와 네 마리 맹수의 가죽을 벗겨 가지고 충주에 도착했는데, 순백(巡伯)이 게으름을 부리다 늦게 왔다고 힐책을 하며 죄를 주려고 하자, 아전이 그렇게 된 연유를 아뢰면서 가죽을 증거물로 제시하여 처벌을 면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호랑이 굴속으로 들어가 찾지 않으면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얻겠는가.”라는 말이 전해 온다. 그런데 지금의 경우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호랑이 새끼를 얻었으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런데 저 표범으로 말하면, 자기 재주를 믿고 까불다가 호랑이에게 부림을 받아 결국에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 이는 스스로 재앙을 부른 것이라고 하겠다.

<최립/간이집>


丹陽郡吏一人齎公牒。戴星走忠州。至長會院。見虎子三在道旁。用手中杖擊。皆斃。俄有母虎大吼而來。吏蒼黃上高樹。虎若不可如何者。捨之去。吏因解帶。自縳於樹上。以耐良久。虎引一豹復來。豹小而捷緣木。以虎之猛。蓋猶有待也。吏悶先豹逼身。自脫褌疊兩脚爲一脚。令厚蒙其首而擠之。虎遽認蒙墜地是人。恣齚殺之。旣而諦視。人故毋動。代之斃者豹耳。虎繞樹躑躅。復大吼。入山谷去。天亦明。吏下樹。剝四死皮。乃達于州。巡伯詰其慢。將罪之。吏告之故。具驗以皮。得免云。古語曰。不探虎穴。安得虎子。今不然而得虎子則幸也。若豹負其技而使於虎。竟爲所殺。斯其自取之也夫。<崔岦/簡易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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