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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지 말고, 전성기에 떠나고, 못 갚을 사람에게 베풀라 <채근담>


하던 일에서 물러남에는

전성기에 물러남이 마땅하고

몸을 편안하게 두기에는

홀로 뒤쳐진 곳에 두는 것이 마땅하다.

덕을 삼가 지킴에는

모름지기 아주 작은 일부터 삼가야 하고

은혜를 베풂에 있어서는

갚지 못할 사람에게 힘써 베풀어야 한다.


謝事,  當謝於正盛之時.  居身,  宜居於獨後之地.
사사,  당사어정성지시.  거신,  의거어독후지지.
謹德,  須謹於至微之事.  施恩,  務施於不報之人.
근덕,  수근어지미지사.  시은,  무시어불보지인.

<채근담菜根譚/명각본明刻本(만력본萬曆本)/전집前集>


  • 사사[謝事]  일을 그만두고 물러남. 벼슬에서 물러남. 또는 속사(俗事)를 버림. 어떤 일을 구실로 사직을 청원하는 것.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 증중소시승치사귀은잠산(贈仲素寺丞致仕歸隱潛山)에 “잠산의 은군은 금년의 나이 일흔넷인데, 감동 녹발로 방금 세상일 사절하였네.[潛山隱君七十四, 紺瞳綠髮方謝事.]”라고 하였다.
  • 거신[居身]  몸을 두다. 처신하다.
  • 근덕[謹德]  덕을 삼가다. 도덕을 삼가지킴. 덕행을 삼감. 덕행을 삼가서 과실이 없게 하고자 함.
  • 근수[謹守]  조심스럽고 정중(鄭重)한 태도(態度)로 지킴. ​조심스럽고 정중한 태도로 지킴. 조심하고 정성껏 지킴. 엄수(嚴守)하다.
  • 근수삼자[謹守三者]  손숙오(孫叔敖)는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현재상(賢宰相)이다. 그가 영윤(令尹)에 임명되었을 때에 사람들이 모두 축하하였으나 노부(老父) 한 사람만은 서글퍼하며 경계하였는데, 손숙오가 재배하며 가르침을 청하자 그 노부가 “지위가 높아졌으면 뜻은 더욱 낮출 것이요, 관직이 커졌으면 마음은 더욱 작게 가질 것이요, 녹봉이 후해졌으면 조심해서 취하지 말 것이다. 그대가 이 세 가지를 충실히 지킨다면, 초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位已高而意益下 官已大而心益小 祿已厚而愼不取 君謹守此三者 足以治楚]”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9 循吏列傳> @★
  • 지미[至微]  더할 나위 없이 미세(微細)함. 극히 작은 것. 극히 적은 것. 극히 미미한 것. 참고로 당(唐)나라 때 명신(名臣) 육지(陸贄)가 임금에게 올린 주의(奏議)에 “폐하께서는 응당 그 말한 바를 살피되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되고, 그 더부는 바를 믿되 진실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지극히 미미한 바다 새도 오히려 진정과 거짓을 아니, 신령함을 간직한 부류는 정말이지 반드시 속이기 어렵습니다.[陛下可審其所言而不可不慎, 信其所與而不可不誠. 海禽至微, 猶識情僞, 含靈之類, 固必難誣.]”라고 하였다. <歴代名臣奏議 卷201 聽言>
  • 지정지미[至精至微]  지극히 정미함. 아주 작은 부분까지 빈틈이 없고 정확하며 자세함.
  • 지정지밀[至精至密]  지극히 정밀함.
  • 시은[施恩]  남에게 은혜(恩惠)를 베풂. 시주(施主)로부터 받은 은혜(恩惠).
  • 독후지지[獨後之地]  홀로 뒤떨어져 있는 지위. 남들과 다툼이 없는 자리.
  • 급류용퇴[急流勇退]  벼슬자리를 단연 버리고 과감하게 물러나는 것이 급류를 건넘과 같이 용감함을 이르는 말. 벼슬자리에서 기회를 보아 제때에 용기 있게 물러남. 관원으로 있으면서 뜻을 얻었을 때 즉시 물러나서 명철보신(明哲保身)하는 것을 말한다. 송(宋)나라의 전약수(錢若水)가 진단(陳摶)을 찾아갔을 때 진단이 어떤 노승(老僧)과 함께 화로를 끼고 앉아 있었다. 그 노승이 전약수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부젓가락으로 ‘주부득(做不得)’이라고 세 글자를 쓰고는 말하기를 “이는 급류 속에서 용퇴할 사람이다.[急流中勇退人也]”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전약수가 신선(神仙)은 되지 못하지만 오랫동안 벼슬살이에 연연하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뒤에 전약수의 관직이 추밀 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는데, 나이 40에 물러나서 쉬었다. <邵氏聞見錄 卷7> 참고로 송나라 대복고(戴復古)의 시에 “오자서(伍子胥)처럼 날이 저물자 거꾸로 행했던 패도(覇道)는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전약수처럼 급류 속에서 용감하게 물러나는 것이야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日暮倒行非我事 急流勇退有何難]”라는 구절이 나온다. <石屛詩集 卷5 曾雲巢同相勉李玉澗不赴召>
  • 급류용퇴[急流勇退]  한창 벼슬길에서 승승장구할 때에 용기 있게 물러나 명철보신(明哲保身)하는 것을 말한다. 전약수(錢若水)가 거자(擧子) 때, 신선이 되기 위해 화산(華山)으로 희이선생(希夷先生)을 찾아가니, 희이는 전약수에게 내일 다시 오라 하였다. 이튿날 다시 가니, 희이가 어떤 노승(老僧)과 화로를 끼고 앉아 있었다. 그 노승이 전약수를 한참을 바라보고는 부젓가락으로 화로의 재 위에 ‘주부득(做不得 될 수 없다)’ 세 글자를 쓰고는 “급류에서 용퇴할 사람이다.[是急流中勇退人也]”라고 하였다. 그 말은 신선은 될 수는 없으나 벼슬에 연연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뒤에 전약수는 출사하여 추밀부사(樞密副使)에 올랐으나, 나이 40세 때 벼슬을 버리고 물러났다. 이튿날 다시 오게 한 것은 희이로서는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에 노승을 불러 전약수에게 신선의 인연이 있는지를 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宋名臣言行錄 前集 卷2 錢若水> 전하여 급류에서 용퇴한다는 것은 곧 관로(官路)가 한창 트인 때에 용감하게 은퇴하는 것을 말한다.
  • 대수장군[大樹將軍]  매사(每事)에 겸손(謙遜)하고 말없이 수고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대수장군(大樹將軍) 풍이(馮異)에 관한 고사로, 보통 장수(將帥)를 지낸 이를 추모할 때 사용하는 비유이다. 풍이대수(馮異大樹). 공손대수(公孫大樹). 대수지공(大樹之功).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공신(功臣)인 풍이(馮異)를 이른다. 맹진장군(孟津將軍)이 되어 양하후(陽夏侯)로 추봉(推封)되었다. 통감절요(通鑑節要) 동한기(東漢紀)에 “유수(劉秀)가 관리와 병졸들을 나누어서 각각 제군(諸軍)에 예속시킬 때에 군사들이 모두 말하기를 ‘대수장군(大樹將軍)에게 소속되기를 원한다.’라고 하니, 대수장군(大樹將軍)은 편장군(偏將軍) 풍이(馮異)였다. 사람됨이 겸손하고 공로를 자랑하지 않아서 관리와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적과 교전하거나 적의 침공을 받은 경우가 아니면 항상 여러 군영의 뒤에 있게 하고, 매번 머무는 곳에서 제장(諸將)들이 함께 공(功)을 논하면 풍이(馮異)는 항상 홀로 나무 아래로 물러가 있었다. 그러므로 군중에서 그를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 불렀다.[秀部分吏卒, 各隷諸軍, 士皆言願屬大樹將軍. 大樹將軍者, 偏將軍馮異也, 為人謙退不伐, 敕吏士非交戰受敵, 常行諸營之後. 每所止舍, 諸將並坐論功, 異常獨屏樹下, 故軍中號曰大樹將軍.]”라고 하였다. 전공을 세우고도 논공행상(論功行賞)하는 대열에 끼지 않고 뒤에서 기다린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 대수장군[大樹將軍]  전공을 세우고도 논공행상(論功行賞)하는 대열에 끼지 않고 뒤에서 기다린다는 것이다. 후한(後漢)의 풍이(馮異)는 자(字)가 공손(公孫)이고, 영천군(潁川郡) 부성현(父城縣)사람으로 좌씨춘추(佐氏春秋),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능통했다. 왕망(王莽)의 신(新)나라 군연(郡掾)으로서 5개 현을 감독하였으나 한나라 부흥군에게 사로잡혀 사촌형 풍효(馮孝)의 친구인 정침(丁綝), 여안(呂晏)의 천거로 부성현 현장인 묘맹과 함께 후일의 광무제인 유수(劉秀)에게 귀의하였다. 그 후 유수(劉秀; 光武帝)를 도와 후한(後漢) 건국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후한서(後漢書) 卷17 풍이전(馮異傳)에 “풍이는 사람됨이 겸손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길을 가다가도 여러 장수와 서로 마주치면 수레를 끌고 길을 피하였다. 나아가고 물러남에 모두 일정한 곳이 있어 군중에서는 그를 정제(整齊; 단정한 사람)라고 불렀다. 항상 정 위치에 있었으며, 여러 장군들이 같이 앉아 공을 자랑할 때 풍이는 홀로 나무 아래 물러나 있음으로, 군중(軍中)에서는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 명했다. 한단(邯鄲)을 격파하고, 부대를 재편성하면서 여러 장수들에게 다시 배속시킬 때 군사들이 모두 대수장군의 휘하에 속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광무제가 이로써 그가 인망이 많음을 알고 그를 소중 여겼다.[異為人謙退不伐, 行與諸將相逢, 輒引車避道. 進止皆有表識, 軍中號為整齊. 每所止舍, 諸將並坐論功, 異常獨屏樹下, 軍中號曰; 大樹將軍. 及破邯鄲, 乃更部分諸將, 各有配隸, 軍士皆言願屬大樹將軍, 光武以此多之.]”라고 하였다.

【譯文】 急流勇退,  與世無爭  :  愼德於小事,  施恩於無緣.
謝絕世事應當退謝於正處顛峰的時候,  安身處世應該蟄居於獨處人後的境地  ;  謹言愼德必須謹始於極其細微的事行,  布施恩惠務必施舍於不能回報的人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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