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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공환란[可與共患難]~가여여용[賈余餘勇]~가여현경[家如懸磬]


가여공환란 불가여공락[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구천(句踐)은 월(越)나라의 임금으로 제 환공(齊桓公), 진 문공(晉文公), 진 목공(秦穆公), 초 장왕(楚莊王)과 함께 춘추오패(春秋五覇) 중의 한 사람이다. ‘범려’는 춘추 시대 월나라의 대부로 구천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망시켰다. 구천은 기원전 494년에 오나라 임금 부차(夫差)와 싸워 대패하자 회계산(會稽山)에서 오나라를 신하로서 섬길 것을 맹세한 뒤 이후 20여 년을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면서 국력을 길러 기원전 473년에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오나라가 멸망한 뒤 상장군(上將軍)이 된 범려는 대명(大名) 아래에는 오래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하고 떠날 것을 결심한 뒤 친구인 대부 문종(文種)에게 편지를 보내 “나는 새가 모두 잡히면 좋은 활은 거두어 보관하게 되고 교활한 토끼가 모두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법이다. 월왕(越王)은 목이 길고 새의 부리와 같은 입을 가졌으니 환난은 함께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대는 어찌 떠나지 않는가.[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 越王為人 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子何不去]”라고 하였다. 문종은 얼마 뒤에 참소를 받고 구천이 보낸 검으로 자결하였다. 범려는 구천에게 하직 인사를 올린 뒤에 보물들을 싸서 곧장 배를 타고 떠나 제(齊)나라로 갔는데, 제나라에서 치이자피(鴟夷子皮)로 이름으로 바꾸고 수십만 거금의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史記 卷41 越王勾踐世家>

가여낙성이불가여려시[可與樂成而不可與慮始]  보통 사람들과는 함께 성공을 즐길 수 있으나 함께 시작을 도모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전국시대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인 공손앙(公孫鞅: 商鞅상앙)이 진(秦) 효공(孝公)에게 올린 말이다. <史記 권68 商君列傳>

가여신유[可與神遊]  이백(李白)의 대붕부(大鵬賦) 서(序)에 “내가 옛날 강릉(江陵)에서 천태(天台)의 사마자미(司馬子微)를 만났더니, 그가 나를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고 일컬으면서, 자기와 함께 우주 밖까지 정신을 노닐어 볼 수 있겠다.[可與神遊八極之表]고 말하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가여언시[可與言詩]  공자가 시경(詩經)을 가지고 자하(子夏)와 문답하면서 자하를 칭찬하여 “나를 흥기시킨 자는 상(商)이로다.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만하구나.[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라고 하였다. 상(商)은 자하(子夏)의 이름이다. <論語 八佾>

가여여용[賈余餘勇]  춘추 시대에 제(齊)나라와 진(晉)나라가 교전할 적에, 제나라 고고(高固)가 진나라 진영을 유린하며 기세를 떨치고 돌아온 뒤에 “용기가 필요하다면 나의 남은 용기를 팔아 주겠다.[欲勇者 賈余餘勇]”라고 소리쳤던 기록이 전한다. <春秋左氏傳 成公2年>

가여용[賈餘勇]  “용맹하고자 하면 나의 남은 용맹을 사라.”라고 한 용사(勇士)가 있었는데, 좌전(左傳)에 나온다. 가용(賈勇).

가여현경[家如懸磬]  집안이 지극히 가난함을 뜻한다. 집이 텅 비어 서까래만 걸려 있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국어(國語) 노어 상(魯魚上)에 “집은 경쇠를 걸어놓은 것 같고 들판에 푸른 풀이 없으면, 무엇을 믿고 두렵지 않으리오.[家如懸磬 野無靑草 何侍而不恐]”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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