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과불경[見過不更]~견구양생[犬救楊生]~견권지정[繾綣之情]

견과[見過]  꾸지람을 당하다.

견과불경 문간유심[見過不更 聞諫愈甚]  장자(莊子) 잡편(雜篇) 어부(漁父)에 “자기의 과오를 알고서도 고치지 아니하고 충고하는 말을 들으면 도리어 더 심하게 어기는 것을 말 듣지 않음이라 한다.[見過不更 聞諫愈甚 謂之很]”라고 하였다. 당(唐)나라의 성현영(成玄英)은 “과실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아서 간하는 말을 들으면 더 심하게 어기는 이는 말 듣지 않는 사람이다.[有過不改 聞諫彌增 很戾之人]”라고 풀이하였다.

견관[繭館]  왕후가 누에를 치던 곳이다. 한나라 때 황후가 이곳에서 친히 양잠을 했는데, 황후 또는 왕후의 처소를 지칭하기도 한다.

견광[獧狂]  견은 지조가 매우 굳세어 융통성이 없는 것을 말하고, 광은 뜻만 너무 커서 행실이 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공자가 이르기를 “중도(中道)를 지닌 사람을 얻어서 도를 전하지 못할 경우에는 반드시 광견(狂獧)을 택하겠다. 광한 자는 진취하는 바가 있고, 견한 자는 뜻이 견고하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路>

견구양생[犬救楊生]  진(晉) 나라 때 양생(楊生)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무척 개를 사랑하였다. 한번은 겨울철에 술에 취하여 큰 못가에 누웠는데, 산불이 나서 타오르고 있었으나 양생은 모르고 잠을 잤다. 이때 개는 아무리 주인을 깨웠으나 일어나지 않자, 못에 가서 몸을 물에 적셔 주인을 살렸다 한다. <續搜神紀>

견구인[牽狗人]  견구(牽拘)는 구속(拘束)을 받는다는 뜻으로, 사기(史記) 효무본기(孝武本紀)에 “유자(儒者)들이 봉선에 대한 일을 밝게 알지 못한데다가 또 시경, 서경 등 고문에 구애를 받은 나머지 감히 자기 의사를 발표하지 못하였다.[群儒旣以不能辨明 又牽拘于詩書古文而不敢騁]”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견권[繾綣]  살뜰한 뜻. 정의(情誼)가 살뜰하여 못내 잊히지 않거나 떨어질 수 없음. 곡진한 모양. 또는 마음 속에 서리어서 못내 잊혀지지 아니함을 이른다.

견권지정[繾綣之情]  마음속에 깊이 서리어 잊히지 않는 정을 이르는 말이다. 견(繾)은 곡진함이고, 권(綣)은 정다움이다.

견귀야유[見鬼揶揄]  진(晉)나라 나우(羅友)가 환온(桓溫)의 하속(下屬)으로 있으면서 중용되지 못했는데, 한 동료가 군수(郡守)로 뽑혀 부임하게 되자, 환온이 송별연을 베풀어 주었다. 나우가 출근이 늦었기에 환온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나우가 “집을 나서는데 한 귀신이 크게 야유하기를 ‘내 눈에는 네가 남을 전송하는 것만 보인다. 어찌하여 남의 전송을 받지 못하는가?’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늦었습니다.”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任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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