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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광[景延廣]~경영[敬嬴]~경영천하[經營天下]


경연광[景延廣]  경연광은 오대(五代) 때 석씨 진나라[石晉]의 대신인데, 진(晉)은 본시 거란(契丹)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웠으므로 거란과 부자 조손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 소제(少帝) 때에 경연광이 거란과 국교를 단절할 것을 주장하다가 거란의 군사가 쳐들어 와서 나라가 망하고 연광이 잡혀 죽었다.

경연광[景延廣]  후진의 고조(高祖)인 석경당이 죽자 그의 아들인 석중귀(石重貴)를 황제로 옹립한 뒤에 거란에 대해 강경책인 주전론(主戰論)을 극력 주장하며 추진한 결과 거란의 침입을 초래하여 후진이 멸망을 당하게 하였으며 자신도 포로로 잡혔다가 자살하였다. 경연광이 이른바 신하의 호칭을 없애고 손자라고만 칭하는 ‘거신칭손(去臣稱孫)’의 주장을 역설하자, 거란이 노하여 사신을 보내 책망하였는데, 이때 경연광이 다시 “선제의 경우는 북조에서 세워 주었지만, 지금의 황상은 중국이 자체적으로 책립(策立)하였으니, 이웃이 되고 손자가 되는 것이야 상관없지만 신하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先帝則北朝所立 今上則中國自策 爲隣爲孫則可 無臣之理]”라고 답변하고, 또 “우리 진 나라에서는 10만 명의 사람들이 칼을 갈고 있으니, 어른이 싸우고 싶거든 빨리 오도록 하라. 뒷날 손자를 막을 수 없게 되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뒤에 가서 후회하는 일이 반드시 있게 될 것이다.[晉朝有十萬口橫磨劍 翁若要戰則早來 他日不禁孫子 則取笑天下 當成後悔矣]”라고 큰소리를 쳤으나, 막상 거란의 침입을 당해서는 나아가 싸우지 못하고 성책(城柵) 안에서 지키고만 있었으므로 사대부들로부터 “예전에 거란과 우호관계를 끊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그토록 용감했는데, 거란이 이처럼 쳐들어온 지금에는 어쩌면 그렇게도 기운이 빠졌는가.[昔與契丹絶好 言何勇也 今契丹至若是 氣何憊也]”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하였다. <舊五代史 卷88 景延廣傳>

경염[庚炎]  불꽃과 같은 삼복(三伏) 더위. 경열(庚熱). 복염(伏炎).

경영[敬嬴]  경영은 노 문공(魯文公)의 애첩으로 선공(宣公)의 생모인데, 양중(襄仲)을 잘 섬긴 결과 양중이 태자인 악(惡)과 그의 동모제(同母弟)인 시(視)를 죽이고서 선공을 임금으로 세웠다는 기록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18년 조에 나온다.

경영[京營]  서울에 두었던 훈련도감(訓鍊都監)·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수어청(守禦廳)·총융청(摠戎廳)·용호영(龍虎營)의 총칭이다.

경영천하[經營天下]  천하를 경영함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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