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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궐[高闕]~고궐성공[告厥成功]~고귀향공[高貴鄕公]


고궐[高闕]  산 이름으로 높은 산을 뜻한다.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진시왕 33년에 몽염(蒙恬)을 시켜 하수(河水: 황하黃河)를 건너 고궐을 취하게 하였다.”고 하였는데, 장수절(張守節)의 정의(正義)에 “고궐은 산 이름인데 오원(五原)의 북쪽에 있다. 두 산이 마주 보고 있는 것이 대궐과 같고 매우 높기 때문에 고궐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고궐성공[告厥成功]  서경(書經) 우공(禹貢) 맨 마지막에 “동쪽으로는 바다에까지 번져 갔고, 서쪽으로는 유사(流沙) 지역에까지 입혀졌으며, 북쪽과 남쪽의 끝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의 풍성(風聲)과 교화가 사해에 다 미치자, 우가 검은 규[현규玄圭]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舜) 임금에게 그의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東漸于海 西被于流沙 朔南曁 聲敎訖于四海 禹錫玄圭 告厥成功]”라고 하였다.

고귀향공[高貴鄕公]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문제(文帝) 조비(曹丕)의 손자인 조모(曹髦)의 봉호이다. 그는 공경(公卿)들의 영립(迎立)으로 즉위(卽位)한 후, 일찍이 태학(太學)에 행차하여 제유(諸儒)들과 경서(經書)를 논하였고, 특히 감로(甘露) 2년에는 임금이 직접 군신(群臣)을 거느리고 태학(太學)에서 양로(養老)의 예를 거행하여, 왕상(王祥)을 삼로로, 정소동(鄭小同)을 오경으로 삼았는데, 이때 왕상은 사도(師道)에 따라 남면(南面)하였고, 임금은 북면(北面)하여 걸언(乞言 좋은 말을 요청하는 것)하자, 왕상이 명왕(明王)·성제(聖帝)의 군신(君臣) 간에 있었던 정치·교화에 관한 요지를 훈유(訓諭)하였다. <三國志 卷4 高貴鄕公> <通典 卷67 禮>

고귀향공[高貴鄕公]  삼국시대(三國時代) 위(魏)나라 4대 임금인 조모(曹髦)의 봉호로, 위 문제(魏文帝)의 손자인 조모(曹髦: 字 사언士彦)가 정시(正始) 연간에 담현(郯縣) 고귀향공(高貴鄕公)에 봉해진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모는 유자(儒者)들과 유교 경전을 논하기도 하였으나, 사마소(司馬昭)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를 치려다가 시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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