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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락투[穀洛鬭]~곡란[鵠鸞]~곡란암자[鵠卵菴子]


곡락투[穀洛鬭]  곡수(穀水)와 낙수(洛水)의 두 물이 서로 많이 흘러 각기 물길을 차지하려는 것이 마치 싸우는 것처럼 보임을 이른 말. 국어(國語) 주어 하(周語 下) ‘태자 진이 영왕에게 곡수 막는 일을 간하다(太子晉諫靈王壅谷水태자진간영왕옹곡수)’에 “주영왕(周靈王) 22년에 곡수(穀水)와 낙수(洛水)가 물길을 다투어 장차 왕궁(王宮)을 침식하여 무너뜨리려 하자 양왕(靈王)이 물길을 막으려고 하였다.[靈王二十二年 穀洛鬭 將毁王宮 王欲壅之]”는 내용이 있다. 곡수(穀水)는 하남(河南)의 민지(澠池)·신안(新安)을 경유하는 본류(本流)이고, 낙수(洛水)는 하남(河南)의 의양(宜陽)을 경유하여 동북쪽으로 흐른다. 일설에는, ‘洛(락)’은 ‘雒(락)’으로 써야 된다고 한다.

곡란[鵠鸞]  고니와 난새라는 뜻으로, 타인의 자제를 일컫는 미칭(美稱)이다. 한유(韓愈)의 전중소감마군묘명(殿中少監馬君墓銘)에 “내가 물러 나와 소부를 보건대, 푸른 대와 벽오동에 난새와 고니가 우뚝 멈춰 서 있는 것 같았으니, 그는 부조(父祖)의 업(業)을 제대로 지킬 만한 사람이었다.[退見少傅 翠竹碧梧 鸞鵠停峙 能守其業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뛰어난 후손들을 말한다.

곡란암[鵠卵菴]  이자현(李資玄)은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 문수원(文殊院)을 짓고 살았다. 선설(禪說)을 매우 좋아하였다. 골짜기 안의 그윽하고 깊은 곳에 식암(息菴)을 지었는데, 마치 고니 알[鵠卵]과 같아서 단지 양쪽 무릎을 포개어 앉을 만한 크기였다. 그 안에 묵묵히 앉아 좌선하였다.

곡란암자[鵠卵菴子]  이자현(李資玄)이 살았던 초암(草菴)을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6 춘천 조(春川條)에 “고려 이자현이 문수사 골짜기 그윽한 곳에 식암을 짓고 살았는데, 둥그렇기가 고니 알 같고 겨우 두 무릎을 세울 만하였다[作息菴 團圓如鵠卵]”고 하였으며, 그의 시도 함께 수록하여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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