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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률명월[斛律明月]~곡림[哭臨]~곡립[鵠立]


곡률광[斛律光]  북제(北齊) 사람으로 자(字)가 명월(明月)인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태자태보(太子太保)에 이르렀으며, 북주(北周)의 위지형(尉遲逈) 등과 망산(芒山)에서 싸워 대파하고 여러 번 북주(北周)의 군대를 격파하여 함양왕(咸陽王)에 봉해지고 좌승상(左丞相)에 이르렀다. 그러나 뒤에 북주(北周)의 반간계(反間計)로 죽임을 당하고, 북제(北齊)는 곧 멸망하였다. <北齊書 권17 斛律光列傳>

곡률명월[斛律明月]  곡률명월은 곡률금(斛律金)의 아들로 이름이 광(光)이며, 명월은 그의 자(字)이다. 태자태보(太子太保), 태위(太尉)를 거쳤고, 누차 주(周)나라 군사를 무찔러 좌승상(左丞相)에 임명되었다. 그는 집안에서도 몸가짐이 엄숙하여 자제(子弟)들을 대하는 것이 군신(君臣) 사이와 같았고, 성품이 검약하여 뇌물을 일절 받지 않았으며, 또 정사에 간여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싸움터에 나가서는 늘 사졸들의 앞에 나서서 싸웠고 한 번도 법도를 잃는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웃 나라들이 그를 싫어하였다. 주나라 위효관(韋孝寬)이 참언(讖言)으로 동요를 지어 “백승이 하늘로 날아오르니 명월이 장안을 비춘다네.[百升飛上天 明月照長安]”라고 하였으니, 백승은 곡(斛)을 말한다. 또 “높은 산은 꺾지 않아도 절로 무너지고, 떡갈나무는 붙잡아 주지 않아도 절로 선다네.[高山不摧自崩 槲木不扶自竪]”라는 노래를 지어 간첩을 시켜 많이 퍼뜨리게 하여, 곡률명월이 장차 황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암시하자 조정(祖珽) 등이 이를 빌미로 곡률명월을 제거하였다. <北齊書 卷17 斛律光列傳>

곡률명월[斛律明月]  북제(北齊)의 좌승상(左丞相) 곡률광(斛律光)이다. 북제서(北齊書) 곡률금전(斛律金傳)에서 “곡률금(斛律金)의 아들 광(光)은 자(字)가 명월(明月)이었다. 북주(北周)의 장군 위효관(韋孝寬)은 곡률광(斛律光)의 용맹을 꺼려, 마침내 유언(流言)을 만들어서 첩자를 시켜 그 글을 업(鄴)에 누설시켰는데, 조정(祖珽)과 목제파(穆提婆)가 마침내 서로 손잡고 모의하여 그 유언(流言)을 황제에게 알렸다. 황제는 사자(使者)를 보내어 곡률광(斛律光)에게 준마(駿馬)를 하사하고는 그가 사죄하러 오자, 양풍당(涼風堂)으로 끌어들여 류도지(劉桃枝)가 뒤에서 잡아 죽였다. 그리하여 조서(詔書)를 내려 곡률광(斛律光)이 모반을 했다고 하고, 곧 그의 일족을 다 멸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북주(北周) 무제(武帝)가 뒤에 업(鄴)에 들어가 그를 상주국공(上柱國公)으로 추증(追贈)하고서, 조서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있었더라면, 짐이 어떻게 업(鄴)에 들어올 수가 있었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하였다.

곡림[哭臨]  왕이나 왕비의 초상 때 여러 사람이 한곳에 모여 곡하는 예식이다.

곡림[穀林]  요(堯) 임금을 매장한 곳으로, 제왕의 능을 뜻한다.

곡립[鵠立]  조정의 반열에 고니처럼 목을 늘이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시종신이 고니처럼 줄지어 선 통명전, 한 떨기 붉은 구름이 옥황상제를 모셨어라.[侍臣鵠立通明殿 一朶紅雲捧玉皇]”라는 표현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36 上元侍飮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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