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우[貢禹]~공우탄관[貢禹彈冠]~공우희왕양[貢禹喜王陽]

공우[貢禹]  자는 소옹(少翁)으로, 한(漢) 나라 낭야(琅邪) 사람이다. 동중서(董仲舒)의 제자인 영공(嬴公)에게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배웠다. 선제(宣帝) 때 박사(博士)가 되었으며, 원제(元帝) 때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다. 궁중의 사치와 요역의 경감에 대하여 여러 차례 상주하였으며, 인재를 등용하고 상업보다 농업을 중시할 것을 주청하기도 하였다.

공우[貢禹]  전한(前漢) 원제(元帝) 때의 문신(文臣)이다. 명경결행(明經潔行)으로 추천되어 벼슬이 어사대부(御史大夫)에까지 이르렀다. 자는 소옹(少翁)이다. 한 원제(漢元帝)가 어린 나이로 즉위한데다 병까지 들어 모든 정사를 부형(腐刑)을 당한 당시의 실력자 석현을 통해 처리하였는데, 석현이 소망지를 죽인 후로 중론이 흉흉해지자 무마책으로 공우를 천거하여 등용케 하였다. 이에 원제가 그를 간대부(諫大夫)로 삼고 자주 마음을 비워 정사를 문의하였는데, 다른 일만 장황하게 이야기할 뿐 정작 석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석현도 성제(成帝)가 즉위한 다음에 권세를 잃고 고군(고郡)에 돌아가다가 길에서 병사(病死)하는 운명을 맞았다. <漢書 卷72 貢禹傳, 卷93>

공우[貢禹]  한(漢) 나라 선제(宣帝) 때의 낭야(琅琊) 사람이다. 동향의 왕길(王吉)과 친했다. 왕길이 오랫동안 불우하다가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뒤에 원제(元帝) 때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임명되었는데, 공우가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의 관모를 꺼내어 먼지를 털고 출사할 준비를 했다. 과연 얼마 후 공우 또한 간의대부로 임명되었다.

공우관[貢禹冠]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이 은거해 사는 친구를 벼슬자리로 이끌어 주는 것을 뜻한다. 전한(前漢) 때 사람인 왕길(王吉)과 공우(貢禹)가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왕길이 인사(人事)를 맡은 자리에 앉자, 공우가 갓의 먼지를 털고는 자신을 천거해 주기를 기다렸다. <漢書 卷72 王吉傳>

공우탄관[貢禹彈冠]  탄관은 벼슬에 나갈 준비로 갓의 먼지를 턴다는 뜻인데, 한(漢) 나라 때 명사 왕길(王吉)과 공우(貢禹)는 서로 친구 사이로서 취사(取捨)를 똑같이 하였으므로, 세상에서 그들을 일컬어 “왕양이 벼슬에 나가면 공우가 관의 먼지를 턴다[王陽在位 貢禹彈冠]”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七十二>

공우탄관[貢禹彈冠]  한(漢)나라 때 공우(貢禹)와 왕길(王吉)은 서로 아주 친한 친구 사이였던 때문에 왕길이 출사(出仕)하면 공우 또한 자기도 응당 등용될 것을 믿고 관(冠)의 먼지를 미리 떨어 출사를 준비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친구 간에 의기(意氣)가 서로 투합함을 의미한다. <漢書 卷72 王吉傳>

공우희왕양[貢禹喜王陽]  왕양(王陽)은 한(漢)나라 왕길(王吉)로 자가 자양(子陽)이다. 그가 익주자사(益州刺史)가 되자 친구인 공우(貢禹)가 벼슬에 나갈 준비를 하며 갓을 털었는데, 과연 그 후 왕길의 추천을 받아 대부가 되었다 한다. <漢書 卷72 王吉傳>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