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융비음[孔融悲吟]~공융존주[孔融尊酒]~공융주금서[孔融酒禁書]

공융비음[孔融悲吟]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공융이 한직(閑職)에 물러나 있을 적에 많은 후진(後進)들이 찾아와 배우곤 하였는데, 그는 항상 탄식하기를 “자리에는 빈객이 항상 가득하고 술동이에는 술이 항상 떨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걱정이 없겠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七十三>

공융존주[孔融尊酒]  공융은 후한 말기의 학자로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이다. 그는 빈객을 좋아하여 좌중에 항상 빈객이 가득했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좌석에 빈객이 항상 가득하고 술동이에 술이 비지 않으면 나는 근심이 없으리라.[座上客常滿 樽中酒不空 吾無憂矣]”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103 孔融列傳>

공융주금서[孔融酒禁書]  공융(孔融)은 후한(後漢)의 문장가이다. 조조(曹操)가 금주법을 제정하려고 하자 조조에게 편지를 보내 “하늘에는 밝은 주성이 있고, 땅에는 주천군이 있습니다. 요 임금은 천 종의 술이 아니었으면 태평성세를 이룩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공자는 100통의 술이 아니었으면 최고의 성인이란 이름을 갖지 못하였을 것입니다.[天垂酒星之曜 地列酒泉之郡 堯不千鍾 無以建太平 孔非百榼 無以堪上聖]”라고 하였다고 한다. ‘주성(酒星)’은 별 이름이다. ‘주천군(酒泉郡)’은 한 무제(漢武帝) 태초(太初) 원년(기원전 104)에 설치한 고을 이름으로, 모두 9개의 현(縣)이 있다. ‘요 임금’ 운운은 이전에는 소박한 정치였는데, 요·순 시대에 와서 천종백호(千鍾百壺)의 많은 헌주(獻酒)로 막고야산(藐姑射山)의 산신에게 길을 빌려 취향씨(醉鄕氏)의 국경에까지 도달하여 결국 태평성세를 이루었다는 고사를 이른다. ‘공자’ 운운은 “요·순은 천 종의 술을 마셨고, 공자는 100잔의 술을 마셨으며, 자로는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100통의 술을 마셨다.[堯舜千鍾 孔子百觚 子路嗑嗑 尙飮百榼]”라는 옛 속담을 이른다. <漢書 卷28下 地理志下 酒泉郡> <古今事文類聚 續集 卷13 燕飮部 酒 辨禁私釀書, 卷15 燕飮部 酣飮 醉鄕記, 千鍾百榼> <東漢文紀 卷24 孔融 與曹操論酒禁書> <孔叢子 儒服>

공융편억채중랑[孔融偏憶蔡中郞]  공융(孔融)은 후한 말기의 학자로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이다. 조조(曹操)를 비판하다가 처형되었다. 채중랑(蔡中郞)은 후한 때 중랑장을 지낸 채옹(蔡邕)을 말한다. 육경(六經)의 문자(文字)를 확정하여 비석을 세웠다. 후한서(後漢書) 권70 공융열전(孔融列傳)에 “공융은 채옹과 잘 지냈는데, 채옹이 죽은 뒤에 채옹과 모습이 비슷한 병사가 있자 그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면서 ‘노성인(老成人)은 없지만 그 전형(典型)은 남아 있구나.’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