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정명[孔子正名]~공자찬역[孔子贊易]~공자천주[孔子穿珠]

공자정명[孔子正名]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자로가 공자에게 묻기를 “위(衛)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맞이하여 정사를 하려고 하는데, 선생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렵니까?” 하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 하였다. 위나라 영공(靈公)의 아내인 남자(南子)가 음행이 있자, 세자인 괴외(蒯聵)는 계모인 남자를 죽이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진(晉)나라로 도망가 있었다. 그 후 영공이 죽자 괴외의 아들인 첩(輒)이 즉위하였는데, 괴외가 본국으로 들어가려 하자, 첩은 아버지가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였다. 주자(朱子)는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공자가 말씀한 정명(正名)은 바로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라고 풀이하였다.

공자정서[孔子定書]  공자가 서경(書經)을 산정함. 서(書)는 서경(書經), 정(定)은 산정(刪定)한다는 뜻이다. 흔히 공자가 서경(書經)을 산정했다고 전해진다.

공자주안연[孔子鑄顔淵]  양웅(揚雄)의 법언(法言)에 “혹자가 묻기를 ‘사람을 주조할 수 있는가?’ 하니, 양웅이 말하기를 ‘공자가 안연을 주조하였다.’고 했다.[或曰人可鑄與 曰孔子鑄顔淵矣]”고 한 데서 온 말로, 인재를 배양하는 뜻으로 쓰인다.

공자주안연[孔子鑄顔淵]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학행(學行)에 “사람도 그릇처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 공자께서도 안연을 빚어내신 적이 있었다.[孔子鑄顔淵]”라는 말이 나온다.

공자지어양화[孔子之於陽貨]  양화(陽貨)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 계손씨(季孫氏)의 가신(家臣)으로 이름은 호(虎)이다. 성질이 포악하여 계손씨(季孫氏)를 축출하고 국정(國政)을 독단하였으며, 공자(孔子)가 찾아와 자신을 만나볼 것을 바랐으나 공자(孔子)가 찾아오지 않자, 공자(孔子)가 집에 없을 때를 틈타 삶은 돼지고기를 보내주었다. 이에 공자(孔子)는 하는 수 없이 그가 집에 없을 때를 틈타 그의 집을 방문하여 답례하고 돌아오던 중 길에서 그를 만났으나 피하지 않고 상대해 주었는바,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자세히 보인다.

공자찬역[孔子贊易]  찬(贊)은 부연설명하여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으로, 공자(孔子)가 주역(周易)을 부연하여 설명한 열 권의 책을 이른다. 즉 단전(彖傳) 상(上)·하(下),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을 가리키는 바, 이것을 십익(十翼)이라 한다.

공자천주[孔子穿珠]  공자의 구슬 꿰기. 송(宋)나라 목암선경(睦庵善卿)이 편찬(編纂)한 조정사원(祖庭事苑)에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공자(孔子)가 일찍이 진(陳)에서 재액을 당했을 때 구곡주(九曲珠)에 실을 꿰게 되었는데, 방법을 몰라서 망설이던 차에 뽕을 따는 여인이 ‘조용히 생각하고, 생각을 조용히 하라.[밀이사지密爾思之 사지밀이思之密爾]’고 비결을 가르쳐 주므로 공자가 곧 깨닫고는 개미허리에다 실을 묶은 다음 그 구멍에 꿀[밀蜜]을 묻혀서 개미를 통과하게 하여 실을 꿰었다.[世傳, 孔子厄於陳, 穿九曲珠. 遇桑間女子, 授之以訣云, 密爾思之, 思之密爾. 孔子遂曉, 乃以絲繫蟻, 引之以蜜而穿之.]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말라[불치하문不恥下問]. 구곡주(九曲珠)는 아홉 굽이로 꼬불꼬불하게 구멍이 뚫린 구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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