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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탄관[貢子彈冠]~공자하[公子瑕]~공자한언리[孔子罕言利]


공자타삼도[孔子墮三都]  노(魯)나라 환공(桓公)에게는 아들이 넷 있었는데, 첫째인 장공(莊公)을 제외한 나머지 세 아들을 시조로 하는 중손씨(仲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가 노나라의 유력한 대부 가문이 되었다. 환공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삼환(三桓)’이라고 부른다. 중손씨는 성읍(成邑), 숙손씨는 후읍(郈邑), 계손씨는 비읍(費邑)을 식읍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근거로 하여 군주를 무시하고 국권을 전횡하였다. 그런데 차츰 자기 식읍의 읍재(邑宰)들이 읍을 점거하고 오히려 자신들을 위협해 오자 정공(定公)과 함께 그 성을 허물기로 하였다. 당시에 공자(孔子)는 사구(司寇)로서 자로(子路)와 함께 이 일을 추진하였다.

공자탄관[貢子彈冠]  공자(貢子)는 한(漢) 나라 원제(元帝) 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냈던 공우(貢禹)를 말한다. 벼슬을 그만두었다가도 친구인 왕길(王吉)이 조정에 몸담고 있으면 관의 먼지를 털면서 불러 주기를 기다렸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漢書 卷72 王吉傳>

공자필방지[孔子必放之]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보이는 공자(孔子)의 말로 “정(鄭)나라의 음탕한 음악을 추방하라.[放鄭聲]”고 하였다. 방지(放之)의 지(之)는 정위지음(鄭衛之音)을 가리킨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치세(治世)의 음악은 편안하고 즐거우니 정사가 화평하기 때문이고, 난세(亂世)의 음악은 원망하고 분노하니 정사가 괴리되기 때문이고, 망국(亡國)의 음악은 애처롭고 그리워하니 백성이 곤궁하기 때문이다.[治世之音 安以樂 其政和 亂世之音 怨以怒 其政乖 亡國之音 哀以思 其民困]”라고 하였으며, 또 “정(鄭)·위(衛)의 음(音)은 난세(亂世)의 음이니 태만함에 가까우며, 상간(桑間)·복상(濮上) 지역의 음(音)은 망국(亡國)의 음이니 정사가 산만하여 백성들이 유리(流離)한다.[鄭衛之音 亂世之音也 比於慢矣 桑間濮上之音 亡國之音也 其政散 其民流]”고 하였다. 또 공자(孔子)는 치국(治國)의 대도(大道)를 물은 안연(顔淵)의 질문에 “정(鄭)나라의 음악을 추방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멀리해야 하니, 정(鄭)나라의 음악은 음탕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위태롭다.[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고 하였는바, 여기서는 위에 소개한 악기(樂記)와 논어(論語)의 내용을 합하여 말한 것이다. 상간(桑間)과 복상(濮上) 역시 위(衛)나라 땅으로 뽕나무숲 사이와 복수(濮水) 가를 이르는데, 이들 지역에 음탕한 음악이 유행하였다 한다.

공자하[公子瑕]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제후. 성공(成公)을 내쫓은 대부(大夫) 원훤(元晅)의 옹립으로 왕이 되었지만, 2년 뒤 성공(成公)이 주(周)나라 천자의 협조를 받아 복위한 성공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史記 卷37 衛康叔世家>

공자한언리[孔子罕言利]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공자(孔子)께서는 리(利)와 명(命)과 인(仁)을 드물게 말씀하셨다.[子罕言利與命與仁]”라고 보인다.

공자행[公子行]  악부 신악부사 잡제 중의 하나이다. 당나라 장호(張祜) 등의 작품이 있다. 왕손(王孫)인 공자들이 술과 놀이에 빠져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모습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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