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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소공[空中邵公]~공중타맥[空中打麥]~공중탄지[空中彈指]


공중산[孔仲山]  공중산(孔仲山)은 공숭(孔嵩)으로, 중산(仲山)은 자(字)이다. 공숭은 범식(范式)의 친구였는데, 집이 가난하고 부모는 연로하자 성명을 바꾸고 신야현(新野縣)의 아리가(阿里街)에서 품팔이를 하였다. 얼마 후 아리가의 자제들이 그의 가르침에 감복하여 유명해지자, 마침내 공부(公府)의 부름을 받고 서울에 올라가 길가의 정(亭)에 유숙하게 되었는데, 도적들이 그의 말을 훔쳤다가 나중에 그것이 공숭의 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공중산은 훌륭한 선비이다. 어찌 그분 것을 도적질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며 말을 돌려보내고 사죄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111 獨行列傳 范式傳>

공중소공[空中邵公]  공중누각(空中樓閣)은 명철하고 통달한 것을 뜻하고, 소공은 송 나라의 학자 소옹(邵雍)을 가리킨다. 주자어류(朱子語類) 제100권에 “정자(程子)가 소 강절(邵康節)을 일러 공중누각(空中樓閣) 같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공중치[公仲侈]  전국 때 한(韓)나라 선왕(宣王) 때 재상으로 공중(公仲)이 성이며 치(侈)는 이름이다. 한군이 진군에 의해 수어(修魚)에서 패하자 그는 진나라와의 강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초나라가 한나라에 원군을 보내줄 것이라고 믿고 있던 한왕이 공중치의 말에 따르지 않고 안문(岸門)에서 진군과 싸워 대패하자 공중치는 태자를 인질로 진나라에 보냈다. 기원전 312년 초나라가 한나라의 옹지(雍氏)를 포위하자 그는 진나라에 구원을 청하려고 했으나 진나라 사자 공손매(公孫眛)를 통해 지나라가 한나라를 돕는 체 하면서 실은 한나라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간파하고 마음을 바꿔 제(齊)와 초(楚) 두 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려고 했다. 선왕의 뒤를 이은 양왕은 그를 계속해서 재상으로 등용했다. 후에 진나라가 의양(宜陽)을 점령하자 그는 명을 받고 진나라에 들어가 사죄를 하고 강화를 맺었다. 이때 공중치와 교유를 맺은 진나라의 재상 감무는 후에 진나라가 점령한 무수(武遂)를 돌려주었다.

공중타맥[空中打麥]  옛날에 왕노(王老)라는 자의 집에 온몸에 상처가 있는 어떤 도사가 와서 술을 몇 말 달라고 하기에, 왕노가 술을 동이에 담아서 주었다. 도사가 술동이 속에 몸을 담갔다가 얼마 뒤에 나왔는데, 몸의 상처가 다 나았으며, 머리 색깔이 도로 검어졌다. 그 도사가 왕노에게 말하기를 “이 술을 마시면 신선이 되어 날아갈 수 있다.” 하자, 왕노의 가족이 보리타작을 하고 있다가 모두 술을 마시고는 한꺼번에 신선이 되어 날아갔는데, 공중에서는 여전히 보리타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集仙傳>

공중탄지[空中彈指]  양서(梁書) 권41 저상열전(褚翔列傳)에 “저상이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시중이 되었을 때에 모친의 병이 위독해지자, 사문을 청해 복을 빌었다. 그러자 한밤중에 홀연히 문밖에 기이한 빛이 보이고, 또 공중에서 손가락 튀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새벽녘에 병이 마침내 나았다.[翔少有孝性 爲侍中時 母疾篤 請沙門祈福 中夜忽見戶外有異光 又聞空中彈指 及曉疾遂愈]”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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