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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광가패[霍光家敗]~곽광참승[霍光驂乘]~곽광폐립[霍光廢立]


곽광가패[霍光家敗]  곽광(霍光)의 처 곽현(霍顯)은 원래 사치스럽고 음탕하며 가학행위를 일삼았는데, 그의 막내딸 성군(成君)을 귀하게 만들 욕심으로 선제(宣帝)의 황후 허씨(許氏)가 출산할 즈음에 유의(乳醫) 순우연(淳于衍)을 사주하여 약물로 황후를 시해케 하고는, 남편에게 권하여 성군을 황후로 세우게 하였다. 그런데 곽광이 죽은 뒤, 감노(監奴) 풍자도(馮子都)와 음행을 저지르다가 시해한 사실이 누설되고, 아들 우(禹)와 종손 운(雲)·산(山) 등의 모반사건이 발각되어 일족이 복주(伏誅)되었으며 곽현은 기시(棄市)되었다. <漢書 卷68, 97>

곽광옹립이군이자손이멸[霍光擁立二君而子孫夷滅]  곽광(霍光)은 한(漢)나라 소제(昭帝)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그를 보좌하여 나라를 안정시켰으며, 소제(昭帝)가 죽은 다음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가 즉위하여 주색(酒色)에 빠지자 그의 제위(帝位)를 박탈하고 여태자(戾太子)의 손자를 옹립하여 선제(宣帝)로 즉위하게 하였으며, 그 공으로 증봉(增封)되었다. 또한 황후 허씨(許氏)를 독살하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만듦으로써 일족의 권세를 강화하였으나 곽광(霍光)이 죽은 후 선제(宣帝)는 그의 일족을 반역죄로 몰아 모두 죽여 버렸다. 곽광(霍光)이 두 임금을 옹립(擁立)했다고 한 것은 바로 소제(昭帝)와 선제(宣帝)를 가리킨다.

곽광전[霍光傳]  곽광은 한무제(漢武帝)의 고명(顧命)을 받고, 소제(昭帝)를 보좌(輔佐)했다. 소제가 죽자, 창읍왕 하(昌邑王賀)를 영립(迎立)했는데, 창읍왕이 실덕(失德)하자 폐하고 다시 선제(宣帝)를 영립하였다. <漢書 卷68 霍光傳>

곽광참승[霍光驂乘]  곽광은 한 무제 때 대장군으로 박륙후(博陸侯)에 봉해졌다. 곽광은 일찍이 무제의 유조(遺詔)를 받들어 어린 소제를 잘 보필해서 천하가 태평하게 잘 다스려졌으나, 소제가 막 죽고 나자 선제(宣帝)가 친정을 하면서 곽씨 일족의 병권을 거둬들이고 마침내 모반했다는 이유로 곽씨를 멸족시켰다. 참승(驂乘)이란 수레를 탈 때 존자(尊者)를 모시고 옆에 타는 것으로, 앞서 선제가 막 즉위했을 때 고묘(高廟)를 참알(參謁)하러 가는 길에 곽광이 참승을 했는데, 이때 선제는 속으로 곽광을 몹시 두렵게 여긴 나머지 마치 등에 가시를 진 것처럼 대단히 불안하였으므로, 뒤에 곽씨가 멸족 당하게 되자 세속에 전하는 말에 “위엄이 임금을 두렵게 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않나니, 곽씨의 앙화는 참승에서 시작되었다.[威震主者不畜 霍氏之禍萌於驂乘]”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68 霍光傳>

곽광폐립[霍光廢立]  곽광은 한 무제(漢武帝) 때 대사마(大司馬)와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였는데, 무제의 유조(遺詔)를 받들어 김일제(金日磾) 등과 유주(幼主)인 소제(昭帝)를 받들어 13년 동안 정치를 잘 하여 백성을 잘 살게 하고 사방을 모두 복종시켰다. 그 뒤 소제가 죽자 창읍왕 하(昌邑王賀)를 세웠으나 음행을 많이 저질렀으므로 그를 폐하고 선제(宣帝)를 영입하여 황제로 삼았다. <漢書 卷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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