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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山谷) / 백석(白石)


돌각담에 머루송이 깜하니 익고

자갈밭에 아즈까리 알이 쏟아지는

잠풍하니 볕바른 골짜기이다

나는 이 골짝에서 한겨울을 날려고 집을 한채 구하였다

집이 몇 집 되지 않는 골안은

모두 터알에 김장감이 퍼지고

뜨락에 잡곡 낟가리가 쌓여서

어니 세월에 비일 듯한 집은 뵈이지 않었다

나는 자꾸 골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골이 다한 산대 밑에 자그마한 돌능와집이 한채 있어서

이집 남길동 단 안주인은 겨울이면 집을 내고

산을 돌아 거리로 나려간다는 말을 하는데

해바른 마당에는 꿀벌이 스무나문 통 있었다

낮 기울은 날을 햇볕 장글장글한 툇마루에 걸어앉어서

지난 여름 도락구를 타고 장진(長津)땅에 가서 꿀을

치고 돌아왔다는 이 벌들을 바라보며 나는

날이 어서 추워져서 숙국화꽃도 시들고

이 바즈런한 백성들도 다 제 집으로 들은 뒤에

이 골안으로 올 것을 생각하였다

– 백석(白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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