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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납[官納]~관내조기[關內阻飢]~관내후[關內侯]~ 관냉천[灌冷泉]


관납[官納]  수령에게 납부하는 것이다.

관내[關內]  지역 이름으로, 관중(關中)을 가리킨다. 지금의 섬서성(陝西省)이다. 그곳에서 볼 때 동쪽엔 함곡관(函谷關), 서쪽엔 산관(散關), 남쪽엔 무관(武關), 북쪽엔 소관(蕭關)이 있어 사방 관문(關門)의 안에 있으므로 관내(關內)라고 한다. 특히 함곡관(函谷關) 안이라는 뜻으로, 관외(關外)와 상대하여 함곡관 서쪽을 가리킨다.

관내조기[關內阻飢]  관내(關內)는 섬서성(陝西省)과 관중(關中) 지방, 감숙성(甘肅省)의 동부를 포괄하는 지역이다. 조기(阻飢)는 오래된 성어(成語)로, 상서(尙書) 순전(舜典)에 “백성들이 굶주림에 허덕인다.[黎民阻飢]”는 용례가 보이는데, ‘阻(조)’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시 제목 “하남(河南) 지방이 난리를 겪고서부터 관내(關內) 지방은 굶주림에 시달리는데 형제마저 이산가족이 되어 각자 다른 지방에 살게 되었다. 달을 보자니 느낀 바가 있어 이에 애오라지 품은 생각을 써서 부량(浮梁)에 있는 대형(大兄), 어잠(於潛)에 있는 칠형(七兄), 오강(烏江)에 있는 십오형(十五兄)에게 부치고 아울러 부리(符離)와 하규(下邽)에 있는 아우와 누이에게 보이다.[自河南經亂 關內阻飢 兄弟離散 各在一處 因望月有感 聊書所懷 寄上浮梁大兄 於潛七兄 烏江十五兄 兼示符離及下邽弟妹]”에 보인다. 반란으로 하남(河南)을 경유해 강남(江南)의 곡식을 실어오는 운하(運河)가 막혀 관내(關內) 지방이 식량조달이 안 된데다 그 해 관중(關中)에 흉년이 겹쳐 기근으로 고생한 사정을 말한다.

관내후[關內侯]  관내(關內)에 있는 제후를 이른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후(侯)라는 명칭은 있어도 경기(京畿) 안에 거처하기 때문에 봉토(封土)는 없다.”고 하였다.

관내후[關內侯]  원래 전국시대 때 진(秦)나라의 작위 제도로 한나라가 따랐다. 20등작 중 19등에 해당하는 작위로 20등작인 철후(徹侯, 혹은 열후列侯)와 함께 후로 호칭되었으나 철후와는 달리 봉국이 없었기 때문에 관내(關內)의 왕성 지역에 거했음으로 붙여진 호칭이다.

관내후[關內侯]  작위(爵位) 이름으로 춘추시대 제(齊)나라에서 최초로 설치하였는데, 이때에는 부용소국(附庸小國)과 같은 지위였다. 진대(秦代)에는 20등으로 되어 있는 군공작(軍功爵) 중에 19번째 등급으로, 가장 높은 등급인 철후(徹侯)의 다음 가는 지위를 갖게 되었다. 한(漢)나라는 이 제도를 그대로 따랐다. <中國官制大辭典 關內侯>

관냉천[灌冷泉]  당(唐)나라 장교(張喬)의 시 ‘작은 소나무를 옮겨 심다.[移小松]’에 “달빛 어린 가지에는 산새가 잠이 들고, 꽃을 아우른 뿌리에는 찬물을 대 준다오.[帶月棲幽鳥 兼花灌冷泉]”라는 시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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