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후[冠冔]~관후영생[灌後迎牲]~관휴[貫休]~관휴영[觀虧盈]

관후[冠冔]  은나라 제도에 따라 만든 갓인데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써 온 관을 뜻한다. 순암집(順菴集) 권16 잡저(雜著) 함장록(函丈錄)에 의하면 “은나라의 갓을 후(冔)라고 하였다. 태사(太師) 기자(箕子)가 우리나라로 올 때에 쓰고 온 갓이 이 후였는데, 점차 제도가 변하여 입(笠)이 되었다. 입은 옛 고구려에서 절풍건(折風巾)이라 부르던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지금은 도리어 우리나라의 입자(笠子)를 절풍건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관후영생[灌後迎牲]  진호(陳澔)의 예기집설(禮記集說)에 “울창주를 땅에 부은 뒤에 희생을 맞이하는 것은, 먼저 향기를 지하[陰]에 전하여 신(神)의 강림(降臨)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향기를 지하에 전하는 것이다.[灌後 乃迎牲 是欲先致氣於陰以求神 故云致陰氣也]”라고 하였다.

관후장자[寬厚長者]  너그럽고 후하며 점잖은 사람을 이른다. 관대장자(寬大長者).

관후청신 범이불교[寬厚淸愼 犯而不校]  성품이 관후하고 청렴하고 근신하며 남이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음을 이른다.

관휴[貫休]  절강성(浙江省) 금화현(金華縣) 출생이며 속성은 강(姜), 자는 덕은(德隱), 호는 선월(禪月)이다. 중국 당말(唐末)~오대(五代)의 승려이다. 17세 때 출가하여 하루에 법화경(法華經) 1000자를 암송하였다고 한다.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오(吳)・월(越) 등을 유랑하며 법화경(法華經)과 기신론(起信論)을 전하였다. 수묵화(水墨畫)에 능하여, 오・월에서 공부하던 중 꿈에 십육나한(十六羅漢)을 보고, 그 상(像)을 그렸다고 한다. 그가 그린 나한상은 매우 괴기한 형상(形相)을 하고 있는데, 이를 ‘응몽나한(應夢羅漢)’이라고 한다.

관휴[貫休]  당승(唐僧)인데 자는 덕은(德隱), 속성은 강(姜)씨로 난계인(蘭谿人)이다. 7세에 출가하여 시를 잘하고 서화에 능하였다. 일찍이 지은 글귀 중에 “물병 하나 바리 하나로 칠십 노인 되어, 천 줄기 물길과 많은 산들을 지나 모처럼 찾아왔소.[一甁一鉢垂垂老 萬水千山得得來]”라는 글이 있어 사람들이 득득화상(得得和尙)이라 칭한다. 촉(蜀)의 임금 왕건(王建)은 그를 존대하여 선월대사(禪月大師)라 불렀었다.

관휴영[觀虧盈]  주역(周易) 겸괘(謙卦) 단사(彖辭)에 “천도는 가득 찬 것에는 덜어내고 겸손한 것에 더해 주며, 지도는 가득 찬 것을 변화하여 겸손한 데로 보내 준다.[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유래하여 관휴영(觀虧盈)은 천도를 살핀다는 말이다.

관휴재하주[關睢在河洲]  주 문왕(周文王)이 덕이 있으므로, 봉황이 그 도읍의 기산(岐山)에서 울었다 하여 시경(詩經)의 첫편 관저편(關雎篇)에 있는데 “관관(關關)한 저구(雎鳩) 새가 하수의 언덕에 있다.”라 하였다. 그것은 부부(夫婦)의 화합함을 읊은 시(詩)로써 주 문왕의 덕화를 칭송한 것이다.

관흥[關興]  관우(關羽)의 아들로 제갈량(諸葛亮)에게 중용된 장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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