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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녕[廣寧]~광노고태[狂奴故態]~광노조흥[狂奴釣興]


광녕[廣寧]  계산기정(薊山紀程) 권4 ‘돌아오는 길[復路] 갑자년 2월 22일’에 의하면, 광녕은 지형이 북쪽으로는 무려(巫閭)에 막히고 남쪽으론 발해(渤海)의 갈석(碣石)에 막혀 몽고・여진・조선의 요충이 되는 땅이라고 하였다.

광녕[廣寧]  명 태조(明太祖) 홍무(洪武) 23년(1390)에 설치한 위(衛) 이름이다. 진(秦)・한(漢) 때의 요동군(遼東郡)으로, 요령성(遼寧省) 경계에 있다.

광노[狂奴]  미친 늙은이라는 말이다. 곧 엄광(嚴光)을 가리킨다. 본성(本姓)은 장(莊)이었는데, 한 명제(漢明帝)의 휘(諱)를 피해 엄(嚴)으로 고쳤으며, 자는 자릉(子陵)이다. 부춘산(富春山)에 숨어살며 동강(桐江)에서 낚시질하였다. 후한서(後漢書) 엄광전(嚴光傳)에 “사도(司徒) 후패(侯覇)는 본래 엄광과 친한 관계로 편지를 보내서 한번 만나자 하였더니, 엄광은 편지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도로 돌려주면서 이르기를 ‘자네는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으니 잘 되었다. 인의(仁義)로 임금을 보좌하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것이요, 아첨하여 임금의 뜻이나 맞추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후패가 그 편지를 광무황제(光武皇帝)에게 바치니 황제는 웃으며 ‘미친 늙은이의 버릇이라.’ 하였다.”고 한다.

광노고태[狂奴故態]  후한(後漢)의 고사(高士) 엄광(嚴光)에게 사도(司徒) 후패(侯覇)가 후자도(侯子道)를 보내 초청하였는데, 엄광이 후패를 매도하면서 입으로 간단히 대답하자 후자도가 보고할 말이 별로 없는 것을 혐의하여 몇 마디만 더 해 달라고 요청하니, 엄광이 “채소를 사면서 더 달라고 떼쓰는 격이다.[買菜乎 求益也]”라고 핀잔을 주었다. 후패가 이 사연을 적어서 광무제(光武帝)에게 보고하니, 광무제가 웃으면서 “미친 작자의 옛날 하던 버릇 그대로이다.[狂奴故態也]”라고 했다는 고사가 진(晉)나라 황보밀(皇甫謐)의 고사전(高士傳)에 나온다. 엄광은 광무제의 어릴 때 친구이다.

광노조흥[狂奴釣興]  광노는 세상의 공훈과 명예를 멀리하고 강변에서 낚시에 흥을 붙이고 사는 은자를 뜻한다. 후한(後漢) 때 엄광(嚴光)이 소년 시절에 유수(劉秀)와 함께 공부하였는데, 유수가 황제가 되자 성명을 바꾸고 은거하여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유수가 그의 어진 덕을 그리워한 나머지 전국 각지에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양 갖옷을 몸에 걸치고 동강(桐江)의 늪지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러자 사신 편에 후한 예물을 들려 보내 엄광을 초빙하였다 한다. <高士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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