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교관[翹關]~교관[喬棺]~교광민월[交廣閩越]~교광후계[交廣厚桂]


교공[橋公]  교공은 후한(後漢) 말에 사도(司徒)와 태위(太尉)를 역임했던 교현(橋玄)을 가리킨다. 조조(曹操)가 미미한 신분이었을 때에 교현을 찾아가 문안을 올리자 “난세를 평정하고 민생을 안정시킬 사람은 바로 그대이다.”라고 높이 인정하고 “내가 죽은 뒤에 내 묘소 옆을 지나면서 한 말 술에 닭 한 마리를 올리지 않으면 세 걸음도 못 가서 복통이 일어날 텐데 그때 원망치 말라.”고 농담을 하면서 약속하게 하였는데, 그 뒤에 조조가 묘소에 들러 직접 제문을 지어서 치제(致祭)하였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81>

교공쟁능[校功爭能]  공을(功) 비교하고 능력을 다툼을 이른다.

교관[交關]  서로 오고 감. 사러 왕래(往來)함.

교관[敎觀]  교상(敎相)과 관심(觀心)의 두 문(門)을 말하는데, 교상은 이론이고 관심은 실천의 뜻이다.

교관[郊關]  도성(都城)을 에워싼 교외 지역을 방어하는 관문(關門)을 말한다.

교관[翹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려 힘을 비교하는, 당대(當代) 무과(武科) 시험 과목의 하나였다. 인정(人政) 권17 선인문(選人門)에 보면 “관(關)의 길이가 1장(丈) 7자(尺)에 지름이 3치(寸) 반인데, 이것을 열 번 든 뒤에 다시 관을 들고 나오되 한 자도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또 열자(列子)에 “공자가 힘이 굳세어 능히 국문의 관(關)을 들 수 있지만, 힘 세다는 소문은 없었다.”라고 하였다.

교관[鮫館]  바다 속에 있는 교인(鮫人)의 집을 가리킨다.

교관[喬棺]  왕교(王喬)의 관. 왕교는 후한 사람으로 섭현(葉縣)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조정에 올라올 때마다, 예전에 상서(尙書)의 관속으로 있을 적에 받았던 신발을 오리로 변하게 하여 그 위에 올라타고 왔다는 부석(鳧舃)의 전설로 유명한데, 하루는 하늘에서 옥으로 만든 관이 동헌 앞에 내려오자, 하늘이 자기를 부른다고 하면서 목욕하고 그 안에 들어가서 세상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後漢書 卷82上 方術列傳上 王喬> 참고로 이백(李白)의 증왕한양(贈王漢陽) 시에 “하늘에서 백옥의 관이 내려오자, 왕교가 섭현의 일을 그만두었다네.[天落白玉棺 王喬辭葉縣]”라는 말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10>

교관[敎官]  조선 시대 동몽교관(童蒙敎官), 내시교관(內侍敎官)의 약칭이다. 이전에는 동몽훈도(童蒙訓導)라 하여 사학(四學) 및 지방 향교(鄕校)에 교수, 훈도 등을 두어 지방 유지의 자제를 가르쳤는데, 이 경우의 교수도 교관이라 하였다.

교광[交廣]  지금의 광동(廣東)과 광서(廣西) 사이 즉 오령(五嶺) 지대를 이른다.

교광민월[交廣閩越]  교주(交州)는 현재의 월남(越南) 하노이 일원(一圓), 광주(廣州)는 현 광동성(廣東省) 일원, 민주(閩州)는 현 복건성(福建省) 일원, 월주(越州)는 현 절강성(浙江省) 일원을 지칭한다.

교광후계[交廣厚桂]  교광(交廣)은 지금의 중국 광동(廣東)과 광서(廣西) 사이 즉 오령(五嶺) 지대를 이른다. 후계(厚桂)는 광서 지역의 특산물로 크고 두꺼운 계피(桂皮)이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