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랍[舊臘]~구래공[寇萊公]~구량[九良]~구량[九兩]

구랍[舊臘]  음력 섣달(12월)을 납월(臘月)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구랍’은 곧 지난 해 섣달(12월)이란 뜻이다. 객랍(客臘)으로도 쓴다.

구래[寇萊]  구래는 북송(北宋) 때의 정치가로 내국공(萊國公)에 봉해진 구준(寇準)을 가리키는데, 구준은 당시의 대표적인 명상(名相)으로 칭해진다.

구래공[寇萊公]  북송 초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구준(寇準)이다. 거란의 침입 때 많은 공을 세워 내국공(萊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구래공이라 불린다. 시에 매우 뛰어났는데, 특히 자연의 애수(哀愁)를 읊은 시가 많다. 시집으로 구충민공시집(寇忠愍公詩集)이 있다.

구래공[寇萊公]  송(宋)나라의 명상(名相)인 구준(寇準)을 말한다. 그가 내국공(萊國公)에 봉(封)해진 까닭에 구래공으로 불린다. 진종(眞宗) 때 동평장사(同平章事)를 지냈고, 거란이 침입했을 때 조정의 논의를 반대하고 거란을 칠 것을 주장하여 거란을 격퇴시키고 불가침 동맹을 맺게 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왕흠약(王欽若)과 정위(丁違)의 모함을 받아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하였으나 평생 동안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고 조야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宋史 卷281 寇準傳>

구래공[寇萊公]  송나라 때 내국공(萊國公)에 봉(封)해졌던 구준(寇准)이다. 자는 평중(平仲), 시호는 충민(忠愍). 구래공이란 뒤에 내국공(萊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부르게 된 것이다. 벼슬은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고, 저서에 파동집(巴東集)이 있다.

구래공[寇萊公]  송패유초(宋稗類鈔) 권15에 “구래공(寇萊公)은 사치를 좋아하고 특히 밤에 연회 열기를 좋아하였다. 그가 관아에서 물러간 뒤에 관사나 변소에는 촛농이 땅바닥에 응결되어 무더기를 이루었다. 그런데 두기공(杜祁公)은 청렴 검소하여 관청에 있을 때에 관촉을 쓰지 않고 조그만 유등(油燈)을 켜 놓고 손님과 고상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하였다.

구량[九良]  구량은 아홉 필의 양마(良馬)이다. 이름은 부운(浮雲)・적전(赤電)・절군(絶群)・일표(逸驃)・자연(紫燕)・녹리총(綠離驄)・용정(龍丁)・인구(驎駒)・절진(節塵)으로 구일(九逸)이라고 불렀다. <西京雜記>

구량[九兩]  태재가 아홉 가지 짝을 가지고 나라의 백성들을 다스렸다. 첫 번째는 목(牧)이다. 땅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장(長)이다. 귀함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사(師)이다. 어짊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네 번째는 유(儒)이다. 도(道)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종(宗)이다. 혈족(血族)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주(主)이다. 이익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이(吏)이다. 행정과 제도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여덟 번째는 우(友)이다. 신임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아홉 번째는 수(藪)이다. 부(富)를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周禮 天官冢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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