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령선견[九齡先見]~구령영적[緱嶺靈笛]~구령취생[緱嶺吹笙]

구령[九齡]  90세를 말한다. 주 문왕(周文王)이 무왕(武王)에게 말하기를 “네가 무슨 꿈을 꾸었는가.” 하니 대답하되 “꿈에 상제(上帝)가 구령을 주었습니다.” 하매 문왕이 말하되 “예전에 연(年)을 영(齡)이라 하는데, 나는 백이요, 너는 90이니 네게 셋을 준다.” 하였다.

구령[九齡]  구령은 90세를 뜻한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아들인 무왕(武王)에게 이르기를 “네가 무슨 꿈을 꾸었느냐?” 하니, 무왕이 대답하기를 “꿈에 천제(天帝)께서 나에게 이빨 9개를 주었습니다.” 하자, 문왕이 이르기를 “옛날에 나이를 영(齡)이라 하였는데, 이빨 또한 영이다. 나는 1백이고 너는 90이니, 내가 너에게 3을 주겠노라.” 하였는데, 그 뒤에 과연 문왕은 97세에 죽었고, 무왕은 93세에 죽었다. <禮記 文王世子>

구령[九齡]  90세를 말한다. 주 무왕(周武王)의 꿈 이야기이다. 무왕이 꿈속에서 상제로부터 아홉 개의 치아[九齡]를 받았다는 말을 부친인 문왕(文王)이 듣고서, 치아는 연령과 관계된 만큼 90세까지 살 것이라고 해몽하고는, 자기의 100세 수명에서 3년을 무왕에게 주어 93세까지 살게 하고 자신은 97세에 죽었다는 이야기가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나온다.

구령[九靈]  도가의 용어로, 심(心)은 강궁 진인(絳宮眞人), 신(腎)은 단원궁(丹元宮) 진인, 간(肝)은 난대궁(蘭臺宮) 진인, 폐는 상서궁(尙書宮) 진인, 비(脾)는 황정궁(黃庭宮) 진인, 담(膽)은 천령궁(天靈宮) 진인, 소장(少腸)은 현령궁(玄靈宮) 진인, 대장(大腸)은 미진궁 (未盡宮) 진인, 방광(膀胱)은 옥방궁(玉房宮) 진인이 된다고 한다. <金丹大要 精氣神說>

구령[句領]  곡령(曲領)으로, 둥그스름한 옷깃을 말한다.

구령[緱嶺]  구령(緱嶺)은 왕자진이 숭산(嵩山)에서 도술을 배운 지 30여 년 후 신선이 되어 백학을 타고 와서 머물렀다는 산이다. 신선 왕자교(王子喬)는 본래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로, 이름이 진(晉)이었다고 하여 왕자진이라고도 부른다.

구령[緱嶺]  구령은 구지산(緱氏山)이고, 왕자진(王子晉)은 주나라 영왕(靈王)의 태자로, 왕자교(王子喬)라고도 한다. 왕자 진이 도술을 배워 신선이 된 뒤에 백학(白鶴)을 타고 구지산에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다. <列仙傳 王子喬>

구령[緱嶺]  구씨산(緱氏山)을 가리킨다.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왕자교(王子喬)는 생황을 불어 봉황의 울음소리를 잘 냈는데, 신선 부구공(浮丘公)을 만나 숭산(嵩山)으로 들어가 도술을 배운 지 30여 년 후 백학을 타고 구씨산 마루에 올라가 며칠간 있다가 떠나 버렸다고 한다.

구령[緱嶺]  구지산(緱氏山)을 가리킨다. 구지산은 선경(仙境)이다. 열선전(列仙傳)에 의하면,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인 왕자교(王子喬)는 본디 생소(笙簫)를 불어서 봉황의 울음소리를 잘 냈는데, 그가 일찍이 선인(仙人) 부구공(浮丘公)에게서 도를 배운 지 30여 년 뒤에 구지산(緱氏山)에서 백학(白鶴)을 타고 승천(昇天)했다.

구령[緱嶺]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에 있는 산 이름으로, 구산(緱山), 구씨산(緱氏山)이라고도 한다. 옛날에 왕자교(王子喬)가 환량(桓良)과 7월 칠석에 함께 만났던 곳, 왕자교가 백학(白鶴)을 타고 올라가서 신선이 되었다는 곳이다. 본디는 사람이 도를 닦아서 신선이 되는 곳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일컫는다. <列仙傳 王子喬>

구령단멱이여율[九齡但覓梨與栗]  도연명(陶淵明)은 자기 아이들을 책망하면서 “통이란 놈은 아홉 살이 다 되었는데도, 배와 밤만 찾고 있다.[通子垂九齡 但覓梨與栗]”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陶淵明集 卷3 責子>

구령선견[九齡先見]  장구령(張九齡)의 선견지명(先見之明). 장구령[張九齡)은 당 나라 곡강(曲江) 사람. 현종(玄宗) 때 상서우승상(尙書右承相)을 지냈다. 장구령은 재감(才鑑)이 있고 직간을 잘하였다. 안녹산[安祿山)에게 반역의 상이 있음을 알고 현종에게 상언(上言)하여 “주륙(誅戮)해서 후환을 없애라.”고 하였으나, 현종이 듣지 않았다. 현종이 뒤에 안녹산의 난으로 촉(蜀)에 파천해 있으면서 장구령의 선견지명이 있는 충언을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고 사자를 장구령의 집에 보내어 제사지냈다. <唐書 卷126 張九齡傳>

구령영적[緱嶺靈笛]  춘추 시대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진(晉)이 피리를 매우 잘 불어서 피리로 봉황새의 울음소리를 내곤 했는데, 그가 도사(道士)인 부구공(浮丘公)과 숭산(嵩山)에 올라가 30여 년 만에 구씨산(緱氏山)으로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구령은 곧 구씨산을 가리킨다.

구령취생[緱嶺吹笙]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 진(太子晉)이 본디 생황을 잘 불었었는데, 뒤에 도를 닦아 구지산(緱氏山)에서 신선이 되어 승천(昇天)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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