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연[九龍淵]~구룡정[九龍井]~구룡헌기우[龜龍獻奇偶]

구룡씨기씨[句龍氏棄氏]  사(社) 즉 토지신(土地神)과 직(稷) 즉 곡식신(穀食神)을 가리킨다. 구룡은 공공씨(共工氏)의 아들 이름으로, 수토(水土)를 잘 다스려 뒤에 후토지신(后土之神)이 되었다고 하며, 기(棄)는 주(周)나라의 선조(先祖)로서 농관(農官)이었던 후직(后稷)의 이름으로, 뒤에 곡식을 주관하는 귀신이 되었다 한다.

구룡연[九龍淵]  금강산에서 가장 큰 폭포인 구룡폭포가 떨어지는 곳에 돌절구 모양으로 깊이 패인 곳이 있어 이곳으로 폭포수가 들어갔다가 다시 솟구쳐 흐르는데, 그것이 바로 구룡연(九龍淵)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인 임제(林悌)는 백호집(白湖集) 제34권 풍악록(楓岳錄)에서 ‘만폭동은 바위낭떠러지가 수려하고 수석도 맑아 지팡이 짚고 신발 신고도 건널 만하기 때문에 구경 온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으나, 구룡연은 어두컴컴하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으며 용과 금수(禽獸)들이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낮에도 풍정(風霆)이 일고 괴물이 나타나고 하여 인적이 미칠 수 없는 곳’이라고 하였다.

구룡전[九龍殿]  주대(周代)의 궁궐이었던 숭화전(崇華殿)이 소각되자 위나라의 명제(明帝)가 복건을 명하면서 구룡전이라고 개칭하였다.

구룡정[九龍井]  중국 각처에는 서수(瑞獸)인 용을 상징하여 우물을 구룡정(九龍井)이라 명명한 것이 아주 많거니와, 그중에 특히 녹읍현(鹿邑縣) 동고향(東皐鄕)의 태청궁(太淸宮)에 있었던 구룡정이 유명한데, 여기에는 노자(老子)가 탄생할 때에 구룡이 물을 토해 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明一統志 卷27>

구룡헌기우[龜龍獻奇偶]  귀(龜)는 하우씨(夏禹氏) 때 낙수(洛水)에서 주역(周易) 팔괘(八卦)의 근원이 되는 글을 등에 지고 나온 신귀(神龜)를 말하고, 용은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역시 주역팔괘의 근원이 되는 그림을 등에 지고 나온 용마(龍馬)를 말하며, 기우(奇偶)는 곧 기수와 우수로서 주역의 원리인 음양(陰陽)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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