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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삼고[九載三考]~구재아자[求在我者]~구재학당[九齋學堂]


구재[九齋]  고려 문종(文宗) 때 최충(崔冲)이 설립한 사학(私學)으로, 일명 구재학당(九齋學堂)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국자감(國子監)과 같은 정도의 교육을 실시했다. 최충은 문종(文宗) 때 관직에서 물러난 뒤 후진 양성을 위해 사숙(私塾)을 개설했던 것인데, 생도들이 점차 많이 몰려들자, 학반(學班)을 낙성(樂聖), 대중(大中), 성명(誠明), 경업(敬業), 조도(造道), 솔성(率性), 진덕(進德), 대화(大和), 대빙(待聘)의 구재로 나누어 교육을 실시했던바, 학과(學課)는 구경(九經), 삼사(三史), 제술(製述)을 위주로 하였고, 특히 매년 여름이면 과거(科擧) 지망생들의 과거 응시를 위해 하과(夏課)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구재[九齋]  최충(崔冲)의 사학(私學)인 구재학당(九齋學堂)을 말한다. 악성(樂聖), 대중(大中), 성명(誠明), 경업(敬業), 호도(浩道), 솔성(率性), 진덕(進德), 대화(大和), 대빙(待聘) 등 아홉 개의 학반(學班)이 있었으며, 과거를 준비하는 공부가 주를 이루었다. 최충이 죽은 뒤 시호(諡號)에 따라 이 학당을 문헌공도(文憲公徒)라 하였다.

구재[俱載]  모두 기재함. 비록(備錄)과 같은 뜻이다.

구재[救災]  재난을 구휼함.

구재삼고[九載三考]  9년에 세 차례 고적(考績)하는 것을 가리킨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의 “3년에 한 번 고적하시고, 세 번 고적이 끝난 뒤에 능(能)・불능(不能)에 따른 승진과 퇴출을 명백히 하자 여러 공적이 모두 넓어졌다.[三載考績 三考 黜陟幽明 庶績咸煕]” 한 데서 나온 말로 인사 행정을 신중히 한다는 의미의 말이다.

구재아자[求在我者]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내가 구하면 얻고 버리면 잃는 경우, 그런 것은 구해서 얻는 것이 유익하니, 이는 내 속에 있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求在我者也]. 하지만 구하는 데에 특별한 방법이 있고 얻는 데에 명(命)이 있는 경우, 그런 것은 구해서 얻는 것이 무익하니, 이는 나의 밖에 있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求在外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구재학당[九齋學堂]  사학(私學)의 하나이다. 고려 문종(文宗) 때 최충(崔冲)이 치사(致仕)한 뒤 후진 교육을 위해 개설한 학교로, 당시 국립학교인 국학(國學)은 유명무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과거 응시자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학반(學班)을 악성(樂聖), 대중(大中), 성명(誠明), 경업(敬業), 조도(造道), 솔성(率性), 진덕(進德), 대화(大和), 대빙(待聘) 등 9개로 나누고, 교수 과목은 9경(九經)과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의 삼사(三史)를 중심으로 시부사장(詩賦詞章)을 더하였다. 여름에는 하과(夏課)를 열었는데, 특히 귀법사(歸法寺)의 승방을 빌어 문도 중 과거 급제자로서 학식이 많고 아직 벼슬하지 아니한 사람을 강사로 삼아 생도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최충이 죽은 뒤 과거에 응시하는 자들이 모두 구재학당에 적(籍)을 두었기 때문에 최충의 시호인 ‘문헌(文憲)’을 따라 이들을 모두 문헌공도(文憲公徒)라고 불렀다. <高麗史 卷95 崔冲列傳>

구재환 휼화란[救災患 恤禍亂]  재환을 구제하고, 화란을 구휼함. <春秋左氏傳 魯襄公 二> 재환(災患)은 자연재해(自然災害)이고, 화란(禍亂)은 정권투쟁(政權鬪爭)으로 인한 변란(變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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