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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중아과[寇衆我寡]~구중양중[裘仲羊仲]~구중자황[口中雌黃]


구중아과 난여지구[寇衆我寡 難與持久]  적군은 많고 아군은 적어서 지구전(持久戰)을 벌이기 어려움을 이른다. 통감절요(通鑑節要) 권22 후한기(後漢紀)에 “조조(曹操)의 군사들이 이미 역병(疫病)을 앓고 있어서 처음 한 번 교전했을 때에 조조(曹操)의 군대가 불리하였으므로 군대를 이끌고 강의 북쪽에 주둔하였다. 주유(周瑜)의 부장(部將) 황개(黃蓋)가 말하기를 ‘적(敵)은 병력이 많고 우리는 적으니 더불어 지구전(持久戰)을 하기 어렵고, 조조(曹操)의 군대는 막 함선(艦船)을 연결시켜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이어져 있으니 불을 놓고 도망할 만하다.[寇衆我寡, 難與持久. 操軍, 方連船艦, 首尾相接, 可燒而走也.]’ 하고, 마침내 몽충(蒙衝)의 전함(戰艦)을 가져다가 마른 갈대와 마른 나무를 가득 실은 다음 그 가운데 기름을 붓고는 조조(曹操)에게 미리 편지를 보내어 거짓으로 ‘항복하고자 한다.’ 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몽충(蒙衝)은 전선(戰船)이다. 적의 선박에 충돌하는 배이니, 글자가 몽동(艨艟)와 통한다. 위아래에 두꺼운 판자가 있는 것을 함(艦)이라 하고, 밖이 좁고 긴 것을 몽동(艨艟)이라 한다.

구중양중[裘仲羊仲]  구중과 양중은 한(漢)나라의 은사(隱士)이다. 장후(張詡)가 두릉(杜陵)에 은거하면서 형극(荊棘)으로 문을 막고 집 앞의 대나무 아래 세 갈래 길[三徑]을 내어 양중, 구중하고만 종유했다고 한다. 초학기(初學記)에 한(漢)나라 조기(趙岐)의 삼보결록(三輔決錄)을 인용하여 “장후(蔣詡)의 자는 원경(元卿)이고, 집에 삼경(三逕)이 있는데, 오직 양중과 구중하고만 노닐었다. 이중(二仲)은 모두 청렴으로 추대되었으나 명예를 피했다.[蔣詡 字元卿 舍中三逕 唯羊仲裘仲從之遊 二仲皆推廉逃名]”라고 하였다. 나중에 이중은 은거하며 청렴하게 지내는 사대부를 지칭하게 되었다.

구중양중[裘仲羊仲]  한나라 은자들이다. 초학기(初學記) 권18에 한나라 조기(趙岐)의 삼보결록(三輔決錄)> 인용하여 “장후는 자가 원경이다. 집 안에 세 개 오솔길이 있었는데, 오직 양중(羊仲)과 구중(裘仲)하고만 어울렸다. 이중(二仲)은 모두 청렴으로 추대되었으나 명성으로부터 도피했다.[蔣詡字元卿 舍中三逕 唯羊仲裘仲從之游 二仲皆推廉逃名]”라는 기록이 보인다.

구중연[區中緣]  속세에 사는 사람들이 갖는 인지상정(人之常情). 불교와 도교에서 말하는 세속의 인연을 이른다.

구중자황[口中雌黃]  ‘입안에 자황이 있다’라는 말로 실수한 말을 즉시 정정한다는 뜻이다. 옛날에 글씨는 누런 종이에 썼는데 잘못 쓴 글자가 있으면 자황(雌黃: 색채이름)을 칠하고 다시 썼다. 그러므로 언론에 온당치 않은 점을 고쳐주는 것을 입속의 자황[口中雌黃]이라 이른데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 뜻이 바뀌어 근거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비평할 때 이 말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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