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계[國計]~국고척후[跼高蹐厚]~국공[國公]~국교기비조[國僑譏裨竈]

국경인[鞠景仁]  본시 전주(全州)에 살다가 죄를 지어 회령(會寧)에 유배되어 그곳 회령부의 아전으로 들어가 치부(致富)하였으나, 나라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 왜장 가등청정(加藤淸正)의 군대가 침략해 오자,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고, 그곳에서 피란 중이던 임해군(臨海君 珒)과 순화군(順和君 珏)을 포박하여 왜장에게 넘겨주었다. 남쪽으로 퇴각하는 가등청정으로부터 회령 수비를 위임받았으나 북평사(北評使) 정문부(鄭文孚)의 격문을 받은 유생 신세준(申世俊)・오윤적(吳允廸)에게 잡혀 참살당했다.

국계[國計]  국가의 재정(財政). 나라를 다스리는 방침과 계략.

국고척후[跼高蹐厚]  고(高)는 천(天)이고 후(厚)는 지(地)이니, 곧 국천척지(跼天蹐地)의 뜻이다. 머리가 하늘에 닿을까 두려워 몸을 구부리고 땅이 꺼질까 두려워 발끝으로 살살 디디어 걷는다는 뜻으로, 두려워 몸 둘 바를 모른다는 말이다.

국공[國公]  수(隋) 나라 때부터 있었던 벼슬로 군공(郡公)의 위고 군왕(郡王)의 아래였다. 봉작명(封爵名)으로 수(隋)나라 때 처음 설치하여 명(明)나라 때까지 이어졌다. 수서(隋書) 백관지(百官志)에 의하면 국왕(國王)・군왕(郡王)・국공(國公)・군공(郡公)・현공(縣公)・후(侯)・백(伯)・자(子)・남(男)의 9등급이 있었다.

국교[國僑]  국교는 춘추시대 정(鄭) 나라의 대부 동리자산(東里子産)의 성명이다. 약소국인 정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진(晉)・초(楚)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상황에서 자산은 능란한 외교수완을 발휘하여 나라를 아무 탈없이 유지하였다. <史記 卷42 鄭世家>

국교[國僑]  춘추 시대 정(鄭)나라의 현대부(賢大夫)인 공손교(公孫僑)를 말하는데, 그의 자(字)인 자산(子産)으로 더 잘 알려졌다.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서로 패권을 다툴 적에 외교 정책을 잘 펼쳐서 약소국인 정나라가 그 사이에서 무사히 보전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가 죽자 공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옛날의 유애(遺愛)라고 평한 고사가 전한다. <春秋左氏傳 昭公20年>

국교기비조[國僑譏裨竈]  비조(裨竈)는 춘추 시대 정(鄭)나라의 대부(大夫)로, 천문(天文)과 점후(占候)의 술법에 능하였다. 국교(國僑)는 정나라 공손교(公孫僑)의 별칭인데, 그의 자(字)인 자산(子産)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비조가 자산에게 조만간 화재가 발생할 것이라면서, 나라의 보배인 옥배(玉杯)를 가지고 재난을 물리칠 것을 청하였으나, 자산이 화재가 발생하는 것은 천도(天道)에 속한 일로서 사람이 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비난하며 거절한 고사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17년과 18년 조의 기사에 나온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