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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색천향[國色天香]~국생불래[麴生不來]~국생진인[麴生嗔人]


국색[國色]  국색은 온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인을 말하는데, 꽃으로는 모란을 가리킨다. 모란은 꽃이 크고 아름다운데다 향이 좋아 ‘국색천향(國色天香)’이라 불린다.

국색천향[國色天香]  당나라 이준(李濬)의 송창잡록(松窓雜錄)에 의하면, 당 문종(唐文宗)이 자못 시를 좋아하여 일찍이 수기(修己)에게 묻기를 “지금 경읍(京邑)에 널리 전송되고 있는 모란시 중에 누구의 시가 으뜸가는가?” 하자, 수기가 대답하기를 “신이 공경들 사이에 읊은 모란시를 많이 들어 보았는데, 그중에 중서사인(中書舍人) 이정봉(李正封)의 시에 ‘천향은 밤이슬에 옷을 흠뻑 적시고, 국색은 아침 술에 뺨이 불그레하네.[天香夜染衣 國色朝酣酒]’라는 것이 있더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로, 국색천향은 곧 모란꽃의 뛰어난 빛깔과 향기를 말한다.

국생[麴生]  누룩을 의인화한 것으로, 술을 의미한다. 누룩으로 빚은 술을 의인화(擬人化)한 별칭으로, 국선생(麴先生) 혹은 국수재(麴秀才)라고도 한다. 당나라 현종(玄宗) 때 섭법선(葉法善)이라는 도사가 도술을 아주 잘 부렸는데, 홍려시 경(鴻臚寺卿)이 되어 현진관(玄眞觀)에서 조신(朝臣)들과 잔치를 벌였다. 그때 국수재(麴秀才)라는 자가 와서 뵙기를 청하자 법선이 뒷날에 찾아오라고 하였는데, 스무 살쯤 되는 서생이 곧장 들어와서는 말석에 앉아서 담론을 하다가 일어나 사라졌다. 마치 바람이 도는 것 같아 법선이 이를 도깨비라고 여기고 그가 다시 돌아오자 칼로 내리쳤다. 그러자 그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는 곧바로 술병으로 화하였는데 그 안에 술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그 술을 마시고는 대취하여서 그 병을 향하여 사례하기를 “국생의 풍미(風味)는 잊을 수가 없다.” 하였다. 후대에는 이를 인하여 술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開天傳信記>

국생불래 풍미난망[麴生不來 風味難忘]  본디 ‘술이 오지 않았는데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당나라 정계(鄭棨)의 개천전신기(開天傳信記)에 기록된 “도사 섭법선(葉法善)이 자신을 찾아온 조사(朝士) 수십 명과 앉아서 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자칭 곡수재(曲秀才)라는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 거침없이 담론하여 좌중이 모두 놀랐다. 그가 잠시 자리를 떴을 때 섭법선이 그를 요괴라고 하더니 그가 다시 오자 작은 칼로 그를 몰래 쳤다. 그러자 그는 섬돌 아래로 떨어져 잘 익은 술이 가득한 술병으로 변했는데, 술맛을 보니 매우 좋았다. 객이 취하여 술병을 향해 읍하며 ‘국생(麴生)의 풍미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麴生風味 不可忘也]’라고 하였다.”는 고사를 원용한 표현이다. <古今事文類聚 續集 卷13 麴生風味>

국생진인불해사[麴生嗔人不解事]  양정수(楊廷秀)의 시 ‘동헌에서 춘반을 보내오다[郡中送春盤]’에 “시골 사람은 새 달력을 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춘반을 얻으니 더더욱 한탄스럽네. 새해에 쉰이니 늙음을 어이하랴. 거울에 비친 센 머리 얼마나 많은가? 일처리 서툴다고 국생이 꾸짖으니, 또 이 때문에 춘반에 흠뻑 취하네.[野人未見新歷日 忽得春盤還太息 新年五十奈老何 霜鬢有鏡幾許多 麴生嗔人不解事 且爲春盤作春醉]”라고 하였다. <古今事文類聚 卷6 立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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