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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평기세[君平棄世]~군평렴하[君平簾下]~군평첨윤[君平詹尹]


군평[君平]  진(晉) 나라 때의 공탄(孔坦)을 가리킨다. 군평은 그의 자이다. 공탄은 본디 강직(剛直)하기로 유명한 신하로서 벼슬이 시중(侍中)에 이르렀으나, 뒤에 왕도(王導)의 비위에 거슬려 외직(外職)인 정위(廷尉)로 쫓겨났다. 그러자 앙앙불락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말았다.

군평[君平]  군평(君平)은 점술에 능통했던 엄준(嚴遵)의 자(字)이다. 서한(西漢) 성제(成帝) 때 촉(蜀) 지방에서 점(占)집을 차리고 거북과 시초(蓍草)로 점을 쳐서 사람들에게 길흉을 알려 주었는데, 하루 생계비인 100전(錢)만 마련되면 손님을 받지 않고 점집의 발을 내리고 학도(學徒)들에게 노자(老子)를 가르쳤다고 한다. 양웅(揚雄)의 스승이기도 하다. 저서에 노자지귀(老子指歸)가 있다. <漢書 卷72 王貢兩龔鮑傳>

군평[君平]  한(漢)나라 때 은사 엄군평(嚴君平)이다. 군평은 자이고, 이름은 준(遵)이다. 성도(成都)에서 점을 치고 살면서 점괘를 빙자하여 사람들에게 충효와 신의를 강조했다. 하루에 자신의 하루 생활비인 100전(錢)만 벌면 즉시 가게 문을 닫고 생도들에게 노자(老子)를 가르쳤으며 나이 90이 넘도록 한결같았다고 한다. <漢書 卷72 嚴君平傳> 장건(張騫)이 뗏목을 타고 은하수로 올라가 직녀(織女)에게 돌을 받고는 성도로 가 엄군평에게 보이니, 직녀가 베틀을 괴던 돌[支機石]이라 하였다 한다. <太平御覽 卷8>

군평기세[君平棄世]  군평(君平)은 한(漢)나라 때의 은사 엄군평(嚴君平)이다. 촉(蜀)에 살며 복서(卜筮)로 업을 삼아 날마다 성도(成都)의 시장에서 가게를 열고 점을 보아 돈을 벌었는데, 하루 생활비인 백전(百錢)만 벌면 즉시 가게 문을 닫고 주렴을 내리고 들어앉아서 노자(老子)를 읽거나 저술하였으며, 관원들과는 교제하지 않았고 종신토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백(李白)의 고풍(古風) 시에 “군평이 세상을 버리자, 세상도 군평을 버렸다네.[君平旣棄世, 世亦棄君平.]”라고 하였다.

군평렴하[君平簾下]  군평(君平)은 한(漢)나라 때 복술가(卜術家)인 엄준(嚴遵)의 자이다. 그는 사천(四川) 성도(成都)에서 점을 쳐 주고 살았는데, 백전(百錢)을 벌면 가게문을 닫고 발을 내린 다음 사람들에게 노자(老子)를 가르쳤다 한다.

군평첨윤[君平詹尹]  한(漢) 나라의 엄군평(嚴君平)과 초(楚) 나라의 정첨윤(鄭詹尹)으로, 점을 잘 치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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