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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원신구[屈原訊龜]~굴원침상[屈原沈湘]~굴원피참[屈原被讒]


굴원문천천불어[屈原問天天不語]  초(楚) 나라 굴원이 천문편(天問篇) 지은 것을 말한다.

굴원미자[屈原微子]  굴원(屈原)은 초왕(楚王)이 자기의 간하는 말을 듣지 않자 서울을 떠나 상수(湘水)가에 돌아다니다가 물에 빠져 죽었고, 미자(微子)는 은(殷) 나라 왕족(王族)으로 장차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제기(祭器)를 가지고 나라를 떠났다.

굴원신구[屈原訊龜]  굴원의 작품 속에는 점을 쳐서 물어 보는 대목이 많이 나오는데, 예컨대 이소경(離騷經)의 “영분(靈氛)이라는 점쟁이에게 나의 점을 쳐 보도록 명하였다.”는 것이 그것이다.

굴원지죄인[屈原之罪人]  서한(西漢)의 학자 양웅(楊雄)이 젊었을 때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부체(賦體)를 본떠 부(賦)를 잘 지었는데, 대표작으로 감천부(甘泉賦)・하동부(河東府)・교렵부(校獵賦)・장양부(長楊賦)・반이소부(反離騷賦) 등이 있다. 만년에는 부(賦)가 조충전각(雕蟲篆刻)에 불과하여 인심(人心)과 세도(世道)에 보탬이 안 된다며 짓지 않았다. 반이소부(反離騷賦)는 굴원(屈原)이 불우한 처지를 초연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관하여 이소경(離騷經)을 짓고 강물에 투신자살한 일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그런데 양웅 자신은 서한을 엎은 왕망(王莽)의 신(新)나라에서 대부가 되었기 때문에, 주희(朱熹)가 “양웅은 굴원의 죄인이고, 반이소부는 이소경을 비방한 도적[然則雄固爲屈原之罪人 而此文乃離騷之讒賊矣]”이라고 하였다. <楚辭後語 卷2 反離騷>

굴원침멱일[屈原沈汨日]  굴원이 멱라수에 빠진 날. 단오날을 말한다. 굴원이 단오날에 멱라강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굴원침상[屈原沈湘]  굴원이 상강에 빠짐. 전국 시대 초(楚)나라 굴원은 나랏일을 근심 걱정하여 개탄하는 마음으로 상강(湘水)의 지류(支流)인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주희(朱熹)가 초사집주서(楚辭集註序)에서 “굴원의 사람됨은 그 뜻과 행동이 비록 중용(中庸)을 벗어나 모범을 삼을 수는 없으나 모두가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하여 그 충성을 칭송하였다.

굴원탑[屈原塔]  굴원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굴원피참[屈原被讒]  굴원(屈原)은 초 회왕(楚懷王) 때에 경쟁자인 상관대부 근상(靳尙)의 참소로 인해 소원한 대접을 받아 이소(離騷)를 지어 통분한 심정을 토로하였고, 진나라와 회맹하러 가는 초 회왕에게 가서는 안 된다고 충언을 올렸으나, 결국 초 회왕은 무관(武關)의 회맹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어 진나라에서 죽었다. 굴원은 경양왕(頃襄王) 때에 영윤(令尹) 자란(子蘭)의 참언으로 인해 강남(江南)에 유배를 당하여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 그후 초나라는 날로 쇠약해지다가 수십 년 뒤에 진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史記 卷84 屈原列傳> <史略 卷1 春秋戰國 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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