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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수일[窮愁日]~궁수저서[窮愁著書]~궁수환신건[窮愁換新健]


궁수일[窮愁日]  두보(杜甫)의 지일견흥봉기북성구각로양원고인(至日遣興奉寄北省舊閣老兩院故人) 시에 “어떤 사람이 시름이 다하는 날이라 잘못 생각했는가, 날마다 시름이 한 올의 선 따라 길어지는 것을.[何人錯憶窮愁日 日日隨愁一線長]”이라 하였다. 동지(冬至)는 주역(周易)으로 보면, 순음(純陰)인 곤괘(坤卦) 상태에서 아래에 양효(陽爻) 하나가 막 생겨난 복괘(復卦)에 해당되는데, 양(陽)이 생기고 음(陰)이 물러나는 형상이 되므로 음에 속하는 시름이 다 사라지는 날이라 한 것이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진(晉)・위(魏) 때 궁중에서 붉은 선으로 해그림자를 측량하였는데, 동지 뒤에는 해그림자가 점차 길어지므로 평상시보다 한 가닥의 선을 첨가한다.”라고 하였다.

궁수저서[窮愁著書]  현인이 곤란에 부딪쳐 그 뜻을 펴지 못하고, 글을 지어 그 뜻을 표현함을 이른다. 전국 시대 유세사(遊說士) 우경(虞卿)이 일찍이 조(趙)나라의 재상이 되었다가, 친구인 위제(魏齊)의 일로 인하여 상인(相印)을 내던지고 위제와 함께 양(梁)으로 가서 곤궁하게 지내며 이른바 우씨 춘추(虞氏春秋)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태사공(太史公)은 그를 평론하여 말하기를 “우경은 곤궁한 시름이 아니었다면 또한 글을 저술해서 스스로 후세에 나타내지 못했을 것이다.[虞卿非窮愁 亦不能著書以自見於後世云]”라고 하였다. <史記 卷76 虞卿列傳>

궁수지[窮愁志]  구당서(舊唐書) 이덕유전(李德裕傳)에 의하면, 이덕유(李德裕)가 재상직(宰相職)을 내놓고 남쪽 지방에 폄적(貶謫)해 있을 때 궁수지(窮愁志)를 지었다고 한다. 소철(蘇轍)은 우리론(牛李論)에서 “이덕유(李德裕)는 주애(朱崖)에서 죽고 자손(子孫)은 성명(聲名)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후세에 그의 궁함을 매우 슬퍼한다. 아마 덕은 부족하고 재주는 남아돌아서 진실로 하늘이 복을 주지 않은 것이리라.[德裕沒於朱崖, 子孫無聞, 後世深悲其窮. 豈德不足而才有餘, 固天之所不予邪.]”라고 하였다.

궁수환신건[窮愁換新健]  궁수(窮愁)는 두보(杜甫)의 지일견흥봉기북성구각로양원고인(至日遣興奉寄北省舊閣老兩院故人) 시에 “어떤 사람이 시름이 다하는 날이라 잘못 생각했는가, 날마다 시름이 한 올의 선 따라 길어지는 것을.[何人錯憶窮愁日 日日隨愁一線長]”이라 한 데에서 나온 말이고, 신건(新健)은 새로 건강해진다는 뜻이다. 즉 지난해의 시름을 잊고 새해에는 더욱 건강해지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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