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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來遲]~내지이덕[來之以德]~내직이외곡[內直而外曲]


내지[內旨]  왕비의 명령으로, 왕의 유고시에 왕비가 내리는 명령을 말한다.

내지[內旨]  임금의 은밀한 명령이다.

내지[來遲]  오는 게 더디다. 특히 여인을 기다리는 초조함을 가리킬 때 많이 쓴다. 한서(漢書) 외척전상(外戚傳上) 효무이부인(孝武李夫人)에 “이부인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한무제가 이부인을 잊지 못했다. 제나라 출신 방사 소옹이 혼을 불러올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밤중에 등을 밝히고 휘장을 설치하고 술과 고기를 마련한 뒤에 장막 안으로 황제를 들여보냈는데, 이부인을 닮은 듯한 여인이 장막 안에 앉아 있다가 사라져버렸다. 이에 보고 싶은 마음에 사무친 황제가 ‘그대인가? 아닌가? 일어서서 바라봐도 어찌 이리도 더디 오는가?’라고 시를 지었다.[李夫人少而夭卒, 上思念李夫人不已. 方士齊人少翁言能致其神. 乃夜張燈燭, 設帷帳, 陳酒肉, 而令上居他帳, 遙望見好女如李夫人之貌, 還幄坐而步. 又不得就視, 上愈益相思悲感, 爲作詩曰: 是邪非邪. 立而望之, 偏何姍姍其來遲.]”라고 하였다. 기다리는 여인이 더디 오는 것을 뜻하는 산산래지(姍姍來遲)라는 말이 이로부터 유래되었다.

내지덕[來知德]  명(明)나라 때의 경학자(經學者)로, 산동(山東) 양산(梁山) 사람이다. 자는 의선(矣鮮), 호는 구당(瞿塘)이다. 효행(孝行)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양친(兩親)을 연이어 잃은 뒤로는 베옷을 입고 소식(素食)을 먹으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 학문에 심취하여 문달(聞達)을 바라지 않았으며, 특히 주역(周易)의 연구에 진력하여 29년의 노력 끝에 문왕(文王)의 서괘(序卦)와 공자의 잡괘(雜卦)의 뜻을 다 통하여 주역집주(周易集註) 16권을 지었다. 그의 역학(易學)의 입설(立說)은 오로지 계사전(繫辭傳)의 “착종기수(錯綜其數)”라고 한 말을 가지고 역상(易象)을 논하는 것이다. 그는 한대(漢代) 이후 상수학(象數學)의 집대성자로 불린다. 저서로 주역집주(周易集註), 구당일록(瞿塘日錄), 이학변의(理學辨疑), 심학회명해(心學晦明解) 등이 있다.

내지이덕[來之以德]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권129 화식열전(貨殖列傳)에 “1년을 사는 데는 곡식을 심고, 10년을 사는 데는 나무를 심고, 100년을 사는 데는 덕 있는 자를 남긴다.[居之一歲, 種之以穀. 十歲, 樹之以木. 百歲, 來之以德.]”라는 구절이 있다.

내직이외곡[內直而外曲]  안으로는 강직하고 겉으로는 굽힘. 내심(內心)으로는 강직함을 지키면서도 밖으로는 공손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내진[來瑱]  인명이다. 중당기(中唐期)에 활약한 장군으로 안사(安史)의 난 때 여러 차례 반군을 무찔러 내작철(來嚼鐵)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그 공으로 회남서도절도사(淮南西道節度使)가 되고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오르기도 했으나 난폭한 기질 때문에 파천(播川)으로 유배되어 가던 도중에 사사(賜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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