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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구화[欒巴救火]~난파손주[欒巴噀酒]~난파은대[鑾坡銀臺]


난파구화[欒巴救火]  후한(後漢) 때 성도(成都) 사람 난파(欒巴)가 도술(道術)에 정통하였다. 한번은 조정의 큰 연회(宴會) 석상에서 황제가 하사한 술을 입에 머금고 서남쪽을 향해 내뿜으므로, 조정에서 그의 불경죄(不敬罪)를 다스리려고 하자, 그가 말하기를 “신이 마침 성도의 시장에 화재가 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신이 술을 마셨다가 비로 삼아 뿌려서 그 불을 끈 것이요, 감히 불경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臣適見成都市上火, 臣漱酒爲雨救之, 非敢不敬.]”라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神仙傳 欒巴>

난파봉각[鸞坡鳳閣]  난파와 봉각은 대궐의 별칭이다.

난파손주[欒巴噀酒]  난파(欒巴)는 진나라 때 촉군(蜀郡) 사람이다. 도가(道家)의 술법을 좋아하여 세속의 일은 하지 않았다. 뒤에 입조하여 상서(尙書)가 되었는데, 정월 초하루 대조회 때에 난파가 늦게 참석하였다. 그런데 난파를 보니 약간의 술기운이 있는 듯하고, 게다가 자신의 앞에 원단 축하 술잔이 돌아왔을 때 마시지 않고 입에 머금었다가 서남쪽을 향하여 뿜었다. 이를 본 유사가 매우 불경하다고 여겨 황제에게 아뢰자, 황제가 까닭을 물었다. 난파가 머리를 조아리고 “신의 고향 고을에 큰 불이 나서 술을 뿜어 비를 내리게 하여 불을 껐습니다.[噀酒爲雨以滅之]”라고 대답하였다. 즉시 역마를 파견하여 성도에 물어보니, 과연 새해 첫날 아침에 동북쪽으로부터 비가 몰려와 불을 껐는데, 비에 술 냄새가 풍겼다고 하였다. <藝文類聚> 난파구화(欒巴救火).

난파손주[欒巴噀酒]  도술에 능통한 동한(東漢) 성도(成都) 사람 난파(欒巴)가 조정의 연회 석상에서 황제가 하사한 술을 입에 머금었다가 내뿜어 비를 만들어서 성도 저잣거리의 화재를 진화했다는 이야기가 진(晉)나라 갈홍(葛洪)이 지은 신선전(神仙傳) 난파(欒巴)에 보인다.

난파식연[蘭坡食硯]  난초 언덕은 은자의 거처를 말하고, 벼루를 먹는다는 말은 송(宋)나라 소식(蘇軾)의 차운공의보구한이이심우(次韻孔毅父久旱已而甚雨)의 “나는 밭이 없어 깨진 벼루로 먹고 사는데, 요즘은 벼루가 말랐으니 갈아도 먹물이 나오지 않네.[我生無田食破硯, 爾來硯枯磨不出.]”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난파은대[鑾坡銀臺]  각각 한림원(翰林院)과 승정원(承政院)을 가리킨다.

난패[蘭佩]  난초를 찼다는 것은 곧 초 회왕(楚懷王)의 충신(忠臣) 굴원(屈原)이 소인들의 참소를 입어 조정에서 쫓겨나 강가의 늪지대를 방황하면서 읊은 이소(離騷)에 “강리와 벽지를 몸에 걸쳐 입고, 가을 난초를 꿰어서 허리에 찬다.[扈江離與辟芷兮, 紉秋蘭以爲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楚辭 離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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