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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대패[南珠大貝]~남주북병[南酒北餠]~남주척계전[南州隻鷄奠]


남주대패[南珠大貝]  남주(南珠)는 합포(合浦)에서 나는 명주(明珠)를 이른다. 포박자(抱朴子) 거혹(袪惑)에 “명주(明珠)를 찾을 적에 합포(合浦)의 연(淵)에서 찾지 않으면 여룡(驪龍)의 야광주(夜光珠)를 얻을 수 없다.[凡探明珠 不於合浦之淵 不得驪龍之夜光也]”라고 보인다. 또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에 “합포군(合浦郡)은 곡식이 생산되지 않았으나 바다에서 질 좋은 진주가 나왔다. 이에 이웃에 경계한 교지(交阯趾)와 항상 진주를 교역하여 쌀을 사들여 양식으로 사용하였다. 앞서 부임한 재수(宰守)들이 모두 탐욕스러워 백성들에게 진주 채취를 끝없이 요구하니, 진주가 점차 교지군(交阯郡)의 경계로 옮겨갔다. 이에 상인들이 오지 않아 백성들이 자뢰할 물자가 없어 가난한 백성들이 길에서 굶어 죽었다. 맹상(孟嘗)이 태수로 부임하자, 이전의 폐단을 혁파하고 백성들의 고통과 이익을 찾아내어 고통을 제거해주었다. 이에 해가 지나기 전에 사라졌던 진주들이 다시 돌아와, 백성들이 모두 생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郡不産穀實而海出珠寶 與交阯比境 常通商販 貿糴糧食 先時宰守竝多貪穢 詭人採求 不知紀極 珠遂漸徙於交阯郡界 於是行旅不至 貧者死餓於道 嘗到官 革易前敝 求民病利 曾未踰歲 去珠復還 百姓皆反其業]”라고 보인다. 합포(合浦)는 지금의 광서성(廣西省) 합포현(合浦縣) 서북쪽으로 이곳 바다에서 나는 천연 진주는 세계에서 가장 질이 좋은 진주라 한다. 대패(大貝)는 큰 조개껍질인데, 고대에는 이를 보물(寶物)로 여겼다. 반고(班固)의 백호통(白虎通) 봉선(封禪)에 “천자(天子)의 덕(德)이 못과 샘에까지 이르면, 황룡(黃龍)이 나타나고 예천(醴泉)이 솟으며 하수(河水)에서 낙서(洛書)가 나오고 장강(長江)에서 대패(大貝)가 나오고 바다에서 명주(明珠)가 나온다.[德至淵泉則黃龍見 醴泉涌 河出洛書 江出大貝 海出明珠]”라고 보인다.

남주북병[南酒北餠]  옛날 서울의 도성 남쪽 지역에서는 술을 잘 빚었고, 북쪽 지역에서는 떡을 잘 만들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남주정[南州情]  두보(杜甫)의 시에 “먹을 것이 없으니 안락한 곳을 물을밖에, 입을 것이 없으니 남쪽 지방이 그리울밖에.[無食問樂土 無衣思南州]”라는 구절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卷8 發秦州>

남주척계전[南州隻鷄奠]  남주(南州)는 남주고사(南州高士)로 불린 후한(後漢)의 서치(徐穉)를 가리킨다. 서치가 먼 곳으로 문상 갈 때는 솜을 술에 적셔 햇볕에 말리고 그것으로 구운 닭을 싼 다음, 무덤에 가서 솜을 물에 적셔 술을 만들고 닭을 앞에 놓아 제수를 올린 뒤에 떠났다고 한다. <後漢書 卷83 徐穉列傳>

남주탑[南州榻]  빈객(賓客)을 공경히 대우함을 말한다. 후한(後漢) 말기에 진번(陳蕃)이 특별히 탑(榻) 하나를 걸어두었다가 남주(南州)의 고사(高士) 서치(徐穉)가 내방하면 이를 내려서 우대하였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남중[南仲]  남중은 문왕(文王)의 신하이며, 주(周)나라의 때의 장수이다. 시경(詩經) 출거(出車)에 “왕이 남중에게 명하시어 방 땅으로 가서 성을 짓게 하시고 …… 혁혁한 남중이여 오랑캐를 쳐 없애리로다.[王命南仲 往城于方……赫赫南仲 玁狁于襄]”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왕은 주왕(周王)이다. 남중이 이때에 대장으로서 삭방(朔方)에 가서 성을 쌓았다.”라고 하였다.

남중일색[男中一色]  남자(男子)의 얼굴이 아름답고 썩 뛰어나게 잘 생김. 또는, 그러한 사람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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