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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도고[當塗高]~당돌서시[唐突西施]~당동벌이[黨同伐異]


당도고[當塗高]  길을 당하여 높고 크다는 뜻으로 위궐(魏闕)을 가리킨다. 위궐(魏闕)은 고대(古代) 궁문(宮門) 밖 양쪽에 높이 솟은 눈관(樓觀)인데 이 누관 아래에는 항상 법령(法令)이나 교령(敎令)을 걸어놓은 장소로 삼았는바 높다 하여 위궐(魏闕)이라 명칭하였다. 이는 곧 위(魏)나라가 한(漢)나라를 뒤이을 참언(讖言)이라 한다.

당도자승청운[當途者升靑雲]  후한(後漢) 양웅(揚雄)의 해조(解嘲)에 “길을 얻은 자는 청운에 오르고, 길을 잃은 자는 구렁에 처박힌다. 아침에 권세를 쥐면 경상(卿相)이 되고, 저녁에 권세를 잃으면 필부(匹夫)가 된다. 이를 비유하자면 강호(江湖)의 언덕이나 발해(渤海)의 섬에 네 마리의 기러기가 날아와 앉아도 많은 것이 되지 않고, 한 쌍의 오리가 날아가 버려도 적은 것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當途者升靑雲 失路者委溝渠 旦握權則爲卿相 夕失勢則爲匹夫 譬若江湖之崖 渤澥之島 乘雁集不爲之多 雙鳧飛不爲之少]”라는 말이 나온다. 쌍부(雙鳧)와 승안(乘雁)은 한 쌍의 물오리와 네 마리의 기러기라는 말이다.

당돌서시[唐突西施]  추악한 것을 아름다운 것에 비유하여 아름다운 것을 모독함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동진(東晉) 초인 원제(元帝) 때 주의(周顗)라는 신하가 있었다. 친구인 유량(庾亮)이 어느 날 그에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고결하기가 악광(樂廣)과 비교된다면서 칭송한다는 말을 하자 그는 “무염(無鹽)은 천하의 추녀이며 서시(西施)는 천하절색의 미녀라는 것은 갓난아이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친구들이 나를 만약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악광과 비교한다면 그것은 무염을 서시와 비교하는 것과 같은 짓이다. 어찌 무염에게 화장을 시켜 서시와 비교하려 하는가.[何乃刻畵無鹽 唐突西施]”라고 말하였다. <晉書 卷69 周顗列傳> 무염(無塩)은 전국 시대 제 선왕(齊宣王)의 부인이 되어 정사에 협조하여 나라를 크게 안정시킨 무염 고을의 추녀(醜女) 종리춘(鍾離春)이고, 서자는 전국 시대의 미인 서시(西施)이다.

당동벌이[黨同伐異]  시비(是非)와 곡직(曲直)을 가리지 않고 같은 당끼리는 한 데 뭉쳐 서로 돕고 다른 당은 공격하고 배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후한 때에는 화제(和帝) 이후 황제가 모두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므로 황태후가 섭정이 되었고, 황태후의 친인척인 외척들이 실권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후일 장성한 황제는 이들의 전횡을 탐탁찮게 여겨 자신의 친위 세력을 키우고 이들을 제거해 나가는데, 그 중심이 된 세력이 바로 환관이었다. 환관들은 신분 상승의 욕구 때문에 스스로 거세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집단의 결속력이 유달리 강하고, 사회적 책임이나 정치적 경륜보다는 자신들의 이해에 민감하였다. 유교적 교양을 쌓은 예비 관료 집단인 선비들이 환관의 농단으로 국정이 문란하고 풍속이 타락해 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 리 없었다. 이렇게 선비 집단과 외척, 환관 세력이 서로 물고 물리는 정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격하게 되었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당동벌이(黨同伐異)이다. 후한 말에 이르러 환관들은 외척과 선비 집단을 철저히 탄압하고, 그 결과로 지식인 관료 집단인 선비 집단이 황실을 버림으로써 후한이 자멸하게 되었다. <후한서後漢書 당동전黨同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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