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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銅符], 동부[洞府], 동부[東府], 동부[董傅], 동부도암[東浮圖菴], 동부동[動不動]


동부[銅符]  구리쇠로 만든 신표(信標)로서 한쪽은 도정에서 보관하고 한쪽은 지방관이 소지하고 있다가 군사를 징발할 때 서로 맞추어 본다. 동인(銅印)과 같은 말로, 지방 수령을 뜻한다.

동부[銅符]  동부는 구리를 가지고 범의 형상으로 만든 병부(兵符)이다. 옛날에 지방관이 병사를 징발하는 데에 사용하던 부신(符信)으로, 시대에 따라서 동어부(銅魚符), 동호부(銅虎符), 동귀부(銅龜符) 등의 명칭이 있었다.

동부[洞府]  동천(洞天)과 같은 뜻이다. 도가(道家)에서 신선이 사는 선경(仙境)을 가리키는 말로, 별천지라는 뜻이다. 후대에는 풍광이 뛰어난 곳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동부[洞府]  마을의 별칭이다. 본래는 도교(道敎)에서 신선들이 사는 지역을 일컫는 말인데, 전하여 아름다운 골짜기나 마을을 이른다.

동부[東府]  금릉성(金陵城) 안에 있던 동부성(東府城)을 가리키는데 동진(東晉) 간문제(簡文帝) 때 승상을 지낸 회계왕(會稽王) 사마도자(司馬道子)의 관저가 있던 곳이다. 당송(唐宋) 때는 승상부(丞相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참고로, 왕안석(王安石)의 시 금릉회고(金陵懷古)에 “동부성 옛터에 절집이 남아있고,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 슬픈 가락 뱃전에 지네.[東府舊基留佛刹. 後庭餘唱落船窗.]”라고 하였다.

동부[東府]  동진(東晉)과 남조(南朝)에서 건업(建業)에 도읍할 때 승상겸령양주자사(丞相兼領揚州刺史)의 치소(治所)이다. 동부성(東府城)은, 서쪽은 간문제(簡文帝)가 회계왕(會稽王)으로 있을 때의 저택이었고, 동쪽은 간문제(簡文帝)의 아들 사마도자(司馬道子)의 부(府)였다. 사마도자(司馬道子)가 양주(揚州)를 총령(總領)하면서 그대로 그 집에 머물자 세상에서 동부(東府)라 불렀다. 당(唐)·송(宋) 때는 승상부(丞相府)를 지칭하였다.

동부[董傅]  동현(董賢)과 부안(傅晏)의 합칭이다. 전한(前漢) 애제(哀帝) 때 동현, 부안, 정명(丁明) 등이 권세를 잡아 이들에게 빌붙는 자는 출세하여 2000석(石)의 녹봉을 받는 자리에 오르기도 했는데, 양웅(揚雄)이 당시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하고 있으면서 이들에게 빌붙지 않자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여 “검은 것을 만들지만 아직도 희다.[玄之尙白]”라고 하였다. 이는 양웅이 태현경을 짓고 있으나 아직도 벼슬하지 못한 것을 조롱한 것이다. 즉 태현경(太玄經)은 ‘현(玄)’한 이치를 담은 것인데 이것을 완성하지 못해 아직도 그 빛이 희므로 작위(爵位)가 없다는 뜻이다. <漢書 卷87下 揚雄傳> <文選 卷45 解嘲 竝序>

동부[同符]  사물이나 현상이 똑같이 들어맞음.◉

동부[東部]  서울 안의 5부의 하나. 청부(靑部)라고도 하고, 환나부(桓那部)라고도 한다.

동부[東賦]  우리나라의 부(賦)를 이른다.

동부도[東浮圖]  월출산(月出山)에 도갑사(道岬寺) 주위에 있는 작은 암자의 이름이다.

동부도암[東浮圖菴]  도갑사(道岬寺)의 부속 암자이다. 도갑사는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월출산(月出山)에 있는 사찰로, 신라 말기에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동부동[動不動]  동첩(動輒)과 같은 말로 ‘언제나’, ‘걸핏하면’의 뜻이다.

동부문[東府門]  건강성(建康城) 남쪽의 재상부(宰相府) 문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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