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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마재 신화 / 서정주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人情)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罰)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無窮花)가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一切)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무거운 모습만이 산 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줄 천벌(天罰)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천벌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농사(農事)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어, 신선도(神仙圖)에도 약간 알음이 있다는 좋은 흰 수염의 조 선달 영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鶴)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나 하늘로 신선(神仙)살이를 하러 간 거여…….”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 맷돌을 단단히 매어 달고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않는 거라.” 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이 없으니 조 선달 영감님 말씀이 마음적으로야 불가불 옳기사 옳다.”고 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 속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 모양 양쪽 겨드랑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 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 서정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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